나의 소중한 친구 K와의 이야기
공부 좀 그만 해!
늘 이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은 부전공 했던 친구. 지금도 S대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뭔지도 모르지만, 학위를 두 개나 받았다고 한다. 공부 잘 하는 이 친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 공부 하지 말라고 하는 나는 질투를 하는 것일 게다. 부러운 것이었을까?
국문학은 '굶는 학'이라고, 사회학을 '사외 학'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 이 친구를 그렇게 놀리면서 공부 좀 그만하라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해왔다. 지금은 어떤가? 내가 대학 다니던 20여 년전에도 이런 말이 우스갯소리로 떠돌았다. 지금은 '문송(문과라 죄송)'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니...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참 서글프다.
20대 초중반 K와 나는 술도 많이 마시고 잘도 놀러 다녔다. 이태원과 압구정역 인근 어딘가에서 또는 강원도 어느 MT 숙소에서 낮이고 밤이고 마구 뛰어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같이 신나게 놀았는데, 이 친구는 그 와중에도 공부를 계속 해서 박사가 되었다.
뭐지? 혼자 공부하고 말이야, 나도 공부좀 하라고 하지!
우리는 이제 장례식장에서나 만난다. 어제 K의 시어머님 장례식에 다녀 왔다. 거기서 K의 동생 B를 15년 만에 만났다. 제가 회사 다닐 때 우리 회사에서 알바를 했던 추억이 있다. 장례식장에 10시 넘어 갔더니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조문을 자제하라고 써 있더군. 몰랐다.)
K와 K의 동생 B 그리고 나는 이런 저런 옛이야기를 했습니다. K는 박사님답게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앉아서 중후함을 풍겼다. B는 옛 미소를 그대로 간직한 채 따스한 눈길을 보냈다. 나 혼자 이야기를 막 하고 있었다.
K의 아들이 다가와 수박을 먹길래,
"아줌마 기억 나? 애기 때 같이 설렁탕 먹었는데..."
"..."
그저 수박만 야금야금 먹었다.
"아줌마 누구게?"
다시 물었더니,
"그냥 아줌마요." 씩 웃더니 쌩 가 버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냥 아줌마지 어떤 아줌마가 뭘 중허겄느냐...
장례식장은 서울 보라매병원이었다. 네이버지도에서 9호선을 타고 쭉 가다가 '샛강역'에서 신림선 경전철으로 갈아타라고 했다. 경전철을 처음 타봤다. 쁘띠 지하철. 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앞에 사람이 두 명만 서도 건너편 앉는 자리에 닿을 듯했다. 귀요미 지하철에서의 즐거운 체험이었다.
보라매병원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신림선에는 보라매역과 보라매공원역과 보라매병원역이 주루룩 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보라매병원 가는 길에 보라매역에서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은 보라매병원을 가는 길이지만 보라매공원역에도 내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수요일은 아침부터 일정이 빡빡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는데, 가길 잘 했다. 친구 K도 만나고, 동생 B도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K의 동생 B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B는 나 때문에 돌아서 집에 돌아갔겠구나.
내 철판이 너를 좀 힘들게 했구나, 미안하고 고맙다!
너네 언니와 너희 집 사이 한가운데 딱 우리집이 있으니 우리 동네서 한번 보자꾸나.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대학 시절 함께했던 K와 난 어느 순간부터는 장례식장에서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15년 전에는 K의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8년 전에는 우리 아빠를 보내며 만났다. 얼마 전 4월에는 같이 모임하던 오빠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나 방배 까페 거리에서 오랜만에 맥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날 이후 통화를 하면서 장례식장 말고 다른 데서 꼭 한번 만나자고 했었다. 다시 어제, K의 시어머님 장례식장에서야 만났다.
K야, 어머님 잘 보내드렸니? 3일 동안 바빴겠구나.
좀 쉬면서 마음 잘 추스려.
그리고, 우리 장례식장 말고 다른 데서 좀 만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