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로 만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
수업에 오자마자 흥분한 상태로 불만을 늘어놓는 아이 R. 그분, 사춘기가 온 상태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학교 담임선생님은 수학 숙제를 너무 많이 내 주신다, 엄마는 자기 원하는 걸 못하게 한다 등등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참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선생님과 엄마의 입장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뭐, 그냥 들어주는 수밖에. 그렇다! R도 나에게 답을 달라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게 아닐까!
최진석 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고 있었는데, 이 아이이게 들려줄 게 없을까 뒤적뒤적했다.
R의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지
멋대로 하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 無爲而無不爲(<도덕경> 37장 )
"아싸, 멋대로 살아도 되겠네요!"
당당히 말한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까?
위대한 철학자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최진석 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노자는 '바람직한 일'보다 '바라는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좋은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별적인 욕망에 집중해야 멋대로 살 수 있고,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인간이 그리는 무늬>,p.136
나는 그저 아래의 시를 읽어주었다.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R은 팔딱팔딱 살아있는 물고기 같다. 가끔 살기 싫다는 말을 하는데, 살기 싫은 게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고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다. 알고 보면, 정도 넘치고, 얼굴도 어찌나 예쁜지...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이는 일이에요. 왜? 익숙하게 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들은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럼 무엇이냐? 관습이거나 이념이거나 가치관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죠.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 中 p. 103
인문학을 하면서 정해진 것들에 고개를 쳐들고 버릇없어지고 싶은 날이다. R에게도 그런 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