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로 만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
"난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려요."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자신이 잘하는 걸 더 내놓으며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많은 아이. 2018년생 유아 J. 우리 말 발음보다 영어 발음이 더 유창하다.
얼마 전에, 해외(두바이)에 사는데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고 여기 머무는 동안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톡을 받았다. 문자를 봤을 당시에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하는 수업은 아이에게 도움도 안 되고 내 일정에도 변화를 가져야 해서 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일단 상담하고 결정해도 되니 만났다. 아이들을 만나서 함께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재미를 한창 느끼는 터라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J의 어머님께 원하는 수업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톡을 보냈다. 한글 수업이 목적이면 나보다는 한글 학습지가 더 맞을 것이고, 동화책을 함께 크게 읽고 책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주제)를 나누거나, 어휘나 배경지식을 쌓는 것을 원하시면 나와의 수업이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한글을 다 떼지는 못했지만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수업을 원하셔서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하고 있다.
사실, 한글을 뗀다는 말은 좀 맞지 않는 말이다. 나도 한글을 다 떼지 못했다. 계속 한글을 사용하면서 고치고 배우는 중이다.
J는 창작 동화를 좋아한다. 그맘때쯤에는 창작 동화를 많이 보는 게 좋다. 책을 함께 크게 읽고 있다. 우리 말 발음이 어려워서 천천히 읽고 있지만, 손가락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짚으며, 또박또박 읽으려고 노력하는 J가 귀엽고 기특하다. 옛이야기책은 어려워하고 흥미를 못 느낀다. 일단 낱말이 어려우니 어려울 수밖에.
J의 어머님은 영어와 우리말의 말하는 방식이 달라 J가 헷갈려 한다고 하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들아, 밥 먹자꾸나."에 대한 답으로 우리말로는 "갈게요." 또는 "지금 가요."라고 대답하는데, 영어로는 "I'm coming."이라고 한다. 'go'와 'come'의 뜻과 우리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이 다르다는 것에 아이들은 소위 '멘붕'이 온다. 아, 쉽지 않다! 이건 내가 한두번 가르쳐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자주 말해보고 '습관'으로 만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우리말도 책 읽는 것도 서툴지만, J가 어린이 신문도 접해봤으면 해서 신문을 읽고 어휘도 익히고 스크랩하는 활동을 해 봤다. 신문 내용을 읽고 활동을 한 다음, J는 여백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마스킹 테이프와 스티커 등으로 둘레를 꾸미기를 했다. 아래의 지면은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지문을 읽고 하는 활동지다. 교과서만큼 훌륭한 책은 없다. 이 교과서를 활용해서 문장도 읽고 어휘도 조금씩 익히다 보면 문해력은 좋아지지 않을까! 어휘력과 문해력은 하루 아침에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서 '꾸준히'가 답이다.
동네 서점에 다녀왔다. 7세가 읽을 책이나 국어 공부할 문제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일곱 살 아이랑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때는 집에서 마음껏 뒹굴거리며 창작 동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칙을 세우기는 했지만, J와 J의 어머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말이다.
J와 책 읽는 것 이외에도 국어공부를 하기는 해야 하니 6~7세가 볼만한 문제집을 준비했다. 멀리서 온 J에게 따로 줄 건 없고 선물로 문제집 하나를 준비했다고 어머님께 톡을 보냈더니, 바로 J의 음성으로 메시지가 왔다. 이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의 기쁨이자 보람이다.
수업 올 때마다 시원시원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오는 J. 어여쁘고 귀엽다. 나도 이런 원피스 좋아하는데 하면, J는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한국에 머무는 6주 동안 즐거운 추억을 쌓고, 여러 동화를 읽으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갔으면 좋겠다.
J가 방학 때마다 온다고 하니까, 1년에 두 번씩은 만날 수 있겠다. 만날 때마다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