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로 만나는 남자아이들의 이야기
"3시간도 넘게 걸려 다 읽었어요."
수업 시작하자마자 불만을 늘어놓는 아이 5학년 Y. 책이 점점 두꺼워져서 책을 다 읽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우와, 대단한대! 정말 꼼꼼히 읽었구나. 선생님도 한번에 다 못 읽을 때도 있거든. 나도 이 책 읽으려면 한참 걸려. 나눠서라도 끝까지 다 읽는 너, 훌륭하다!"
엄지 척! 해줬더니, 순간 당황하는 Y. 불평을 했더니 칭찬을 받았으니, '이건 뭐지' 싶었던 거다.
"다 못 읽어와서 핑계만 대는 친구들도 많은데, 우리 Y는 늘 책도 잘 읽고 숙제도 잘 하는 멋진 소년이야!"
라고 한번 더 칭찬을 했더니, 쑥스러운 듯 다른 곳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싫지는 않은 듯하다. 아니 내심 뿌듯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만 춤 추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Y도 마음껏 신나게 춤을 췄으면 좋겠구나!
1학년 초반부터 나와 함께했으니, Y를 알게 된 지 4년이 넘었다. 처음부터 Y는 늘 웃는 상이었다. 인상을 쓴 걸 본 적이 없다. 숙제가 많다고 투덜댈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숙제를 안 해온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참 성실한 아이다. 보조 교재로 교과 문제집이나 국어 독해력 문제집을 숙제로 내 주는데, 그것도 역시 내 주는 만큼 다 해온다. 기특한 아이!
한번은, 국어 문학 문제집을 오답이 없이 잘 풀어와서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안 틀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Y는 그냥 풀고 엄마가 채점을 해주시는데 답이 맞더라고 한다. 남자아이가 이렇게나 문학을 잘 이해한단 말인가? 순간 아이가 정답지를 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Y는 가끔 틀리기도 한다고 하면서 내가 의심을 하니 억울한지 틀린 문제를 보여주었다. 사실 어머님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국어 문제집에 오답이 거의 없어서 어머님께서도 답지를 본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잘 해도 이렇게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의심하고 자꾸만 시험하는구나. 부끄럽다!
이청준 작가의 <연>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발단-전개-절정-결말이 다 담겨 있는 작품이다. 집이 가난해서 아들을 상급 학교에 보내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과 꿈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연날리기만 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늘에 떠 있는 연을 보며 아들의 존재를 확인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높이 떠올라 날아가버린 연을 보며 불안해 하고, 아들이 도회지로 떠난 것을 알면서도 붙잡지 못하고 몸 성히 지내기만을 기도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말이다. 이 작품과 관련한 독해 문제를 풀었는데, 한 문제가 틀렸다고 보여줬었다. 소설을 읽고 Y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작가의 의도(주제)를 잘 파악했으니까, 문제를 많이 안 틀렸겠지... 열심히 하는 아이를 믿고 칭찬만 듬뿍 해줘도 모자랄 텐데, 의심을 하다니 말이다.
저학년 때는 통통하니 귀여웠던 Y가 요즘에 살이 자꾸만 빠지는 게 여실히 보인다.
"왜 이렇게 살이 쪽 빠졌어. 설마 다이어트 하는 건 아니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Y는 입맛이 없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아니, 열두 살에 입맛이 없을 수가 있는 건가? 옛사람 말로 쇠도 씹어 먹을 나이인데 말이다. 볼 때마다 살이 빠져 보여서 신경이 쓰였는데, 5개월 만에 8킬로그램이 빠졌다고 한다. 아니, 그건 내가 해야할 다이어트인데 왜 너에게 그런 일이... 얼굴빛이 좋지 않아 물어보니,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얼마 전에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별일이 없기를 바란다!
Y야, 얼른 입맛이 돌아와서 예전처럼 통통하고 밝은 너의 모습으로 돌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