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로 만나는 남자아이들의 이야기
5학년이 되면서 친구와 함께 수업을 시작한 아이 J. 동그란 안경을 쓴 미소년에, 흔히 말하는 모범생 똘똘이 얼굴이다. 낯을 좀 가리고 긴장도가 조금 있어서 처음에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만날 때마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나와 있는 게 편안해져서 다행이다.
첫 수업에서 축구와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J의 취향에 맞아서 다행이었다. J는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 축구 이야기를 하니까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게다가 그 사람 앞에서 글을 써야 하니,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취향에 맞는 내용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도 누군가 앞에서 글을 쓰라고 하면 정말 부담스러울 것 같다.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 나를 만나자마자 책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독후 활동으로 글을 써내니 말이다. 기특하다!
처음 만난 날에 이가 빠져서 돌아거서 신경이 쓰였는데, 어머님께 톡을 드렸더니 이렇게 답이 와서 안심이 되었다.
오늘 푸드트럭 가야 하는데 거슬리던 이가 빠져서 다행이라고 좋아했습니다ㅎㅎ 처음에는 긴장도가 좀 높아요. 서서히 편해질 거예요. 즐겁다는 학원 별로 없는 아인데 오늘 재밌었다고 들어왔어요. 감사합니다!
J는 책을 정말 꼼꼼히 읽어 온다. 책을 읽고 풀어오는 문제도 대부분 다 맞는다. 워크북을 풀 때도 내용 파악하는 부분을 질문하면 어찌나 대답도 잘 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대답도 잘 하고, 늘 밝게 웃고 씩씩해져서 J의 어머님께 살짝 확인해 보니 집에서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칭찬 많이 해 달라고 어머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만 좀 하라고 도망간다고 한다. 역시 특히 남자 아이들은 집에서랑 밖에서가 정말 다르구나.
같이 수업하는 아이들한테 별명을 만들어 주었다. J는 특히 어휘에 강해서 '어휘왕자'다. 어휘 숙제를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초록 검색창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지만, 찾아 보면서 숙제를 하는 정성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얼마 전에 낱말 관련 신문 기사를 보고, 함께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 봤다. J와 친구들에게도 역시.
J는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역시 나의 기대주!
'금일(今日)'에 이어, 조짐(兆朕)이 보이다.
사례(謝禮)를 하다 / 사례(事例)를 들다
심심(甚深)한 사과
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 시대에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시작했던 J와 친구들은 사생대회를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사생(寫生) 대회를 사생(死生) 대회로 알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책을 꾸준히 읽고 조금씩 조금씩 어휘도 늘려 가다 보면, 문해력이 쑥쑥 자라 있겠지. J와 친구들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J를 보면 우리 큰아들이 5학년 때가 떠오른다. 아이는 담임 선생님을 아주 좋아하고 따랐다. 내향적인 아이가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회장이 되기도 하고 반 대표로 과학대회에도 나갔으며, 교육청 발명반 수업도 들었다. 나 역시 큰아이의 초등학교 선생님 통틀어 그 선생님이 가장 존경스러웠다.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시고, 아이의 강점을 잘 잡아서 칭찬을 듬뿍 해주셔서 큰아들은 그때 자존감이 높아졌고 행복해 보였다. 나는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J에게는 그 선생님처럼 좋은 사람이고 싶다. 이런 소중한 아이를 만나면 나는 좀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해 주는 이런 J 같은 아이들 덕분에 내가 성장해 간다. 고맙다!
아이들아, 그 소중한 순간을 나에게 내어 주어서 고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