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아이시점

1화, 6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나의 빛

by 이선생

나는 아이를 힘겹게 가졌다.

서른 살 동갑내기와 결혼하며,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 후 직장생활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시간을 보냈다. 늦은 결혼도 아니었기에 아이는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며 없던 집착이 생겨났고, 세상이 모두 나를 '아이 없는 여자'로 보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아이는 언제 갖냐"는 질문이나 친척들의 궁금증 섞인 말도 모두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나는 청천벽력 같은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건강보다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나는 짓눌렸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5년 이내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즉시 수술을 결심했다.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에 내 몸이 망가져가는 것도 모르고 버텼던 나날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남편은 나에게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위로했고, 부모님은 큰 수술을 이겨낸 나의 건강만으로도 감사해했다. 병을 알고 수술을 준비하며, 나는 내 삶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감사했고, 옆에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내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아등바등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나의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삶에 대한 불평조차 사치라 느껴졌고, 그저 숨 쉴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제주로 이사하게 되었고, 부모님과 친구가 없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이사한 곳은 평생 처음 살아보는 시골 동네로, 사람보다는 하늘과 자연이 더 가까이 있었다. 전깃줄 없는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듬성듬성 피어난 들꽃이 가득한 길을 걸으며 나는 오랜만에 평화를 느꼈다. 비가 온 다음날, 빗방울이 맺힌 들꽃이 더 노랗게 보이고 숲의 향기가 싱그러운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생의 끝자락을 경험하고 나니 세상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내 삶을 의도적으로 살고,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 했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처럼, 나는 아이를 잊고 내 삶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작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제주 시골생활을 시작한 지 세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을까? 2년간 매일 복용해 오던 약을 이제 끊어도 될 정도로 몸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늘은 내가 그토록 원했지만 잊고 있었던 선물을 주었다. 나는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기쁨과 불안이 뒤섞였지만, 이내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심장소리를 처음 들은 후 유산을 겪은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나의 욕망이 다시 깨어나며, 이번에는 꼭 아이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믿음이 생겼다.

병이 생기기 전이나 수술 후나 내가 유산했고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이 모두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큰 수술을 하고 시골생활을 하고 나서는 나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유산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지만 예전처럼 괴롭거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어느 날 요가 수업에서 만난 사람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내가 유산하기 전에 선물로 받은 아기물건들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유산을 겪은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지금도 신기하다. 그때 나는 곧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선물같이 찾아온 지금의 아이. 이 아이 앞에서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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