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쯤이었을 거다. 지인이 감사의 표현으로 고심하여 골랐다며 선물로 작은 화분을 건네주셨다. 그 마음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이 아이를 만나며 난감함을 숨기지 못할 만큼 식물을 키우는 것에 알러지가 있는 나였다.
일주일에 한 번 물만 주면 살 거라고 키우기 쉽다는 말씀과 함께 건네주신 화분은 다음날부터시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한 달을 버텨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작은 화분은 1년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매일아침 나를 반긴다.
맙소사.
내 생애 이렇게 오래 살아있어 준 식물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생각나는 케이스가 없다. 너무 애타게 키우고 싶어 했던 선인장도 죽이기도 힘들다는 허브까지 모조리 실패했던 내게는 '인생최초'라 할 만큼 기념비적인 상황이었다.
와.. 죽을 듯 죽지 않고 살아나는 녀석을 볼 때면 없는 힘도 쥐어짜서 잘 살아내야만 할 것 같아 점점 집착처럼 녀석을 돌보았다.
그러다 몇 가지 알게 된 점이 있었다.
1. 일주일에 한 번 물 주면 된다는 말은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녀석은 매일아침 조그만 화분이 넘칠 듯 듬뿍 물을 줘야 했다
2. '햇빛을 정기적으로 쐬줘야 꽃이 핀다'는것도 케바케라는 것.
녀석은 이중창 뒤로 간간히 비치는 햇빛을 쐬며 무럭무럭 자라나 몇 번이나 꽃을 피웠다.
좁은 화분에서 얻을 수 있는 양분이라고 고작 수분이 다였지만 아침에 물을 주고 출근하면 저녁에 한 뼘은 큰듯한 우람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렇게 자기 몸집보다도 턱없이 작은 화분에 의지해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작아지는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해 왔다.
'이 녀석도 이렇게 잘 버텨내는데!!'
한 해가 지나고 어느덧 두 번째 해를 채워가며 그 녀석도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직도 미스터리이지만 5번의 꽃을 피우고 5 개 남짓했던 잎은 어느새 세배나 늘어 14개나 넓게 펼쳐져있다. 내 작은 싱크대 한 구석 2년째 자리 잡은 녀석은 그렇게 매일 조금씩 자라나며 하얀 꽃을 예쁘게 피웠다 졌다를 반복해 왔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직장에서 힘겹게 적응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 오던 나의 시간도 여러 번의 고비를 만나고 겨우겨우 이겨내 가기를 반복해 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잎 끝이 병들어 힘없이 시들어 있는 녀석을 마주 보며 내 안의 병든 내면을 끄집어 내본다. 숨겨본들 병든 것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잘라내든 치료를 하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오랜만에 대놓고 부족함을 저격당하고 이젠 정말 마지막 고비구나를 대면하고 보니 오히려 그동안 끙끙거렸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쉬운 일은 없지만 유독 내게는 더 쉽지 않은 일들이 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유독 못하는 것들이 있듯이 하나같이 다른 역량을 가지고 태어나 각자의 기준에서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내게 온 그 녀석이 다른 녀석들과 달리 매일매일 물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햇빛을 제대로 쐬지 못해도 몇 번이고 꽃을 활짝 피워내는 것처럼 녀석은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난 거다.
나도 그러하겠지 생각하며 지금 내 모습이 속상해도 예전만큼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지금의 내게 작은 용기를 불어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