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찌니 Mar 09. 2024

기억은 안 남는데 감정은 남는다

말은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되돌아온다

친한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말이고 행동이다.

어쩌다 서로의 아픈 부분까지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사이가 된 관계들이 있다.  그 속에 여러 색과 성향을 지닌 이들이 섞여있다 보니 가끔은 그 안에서 불협화음이 좋든 싫든 생겨난다. 좋은 말도 한두 번, 싫은 말은 세 번이 넘어가면 고문이 된다.


처음엔 어색함이 불편함이 되어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되었다. 서로의 민낯을 볼 일도 굳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차츰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서로의 이야깃거리가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들로 되어가고 빠르게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물리에서만 '항상성'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 아니었다.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도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서로를 위한 응원하는 마음이 서로를 위해주던 행동들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자 어느 순간 그 감정이 과해져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서로를 다른 의미로 불편함을 느끼며 적당한 거리를 만들게 한다.


뒷담을 듣고 싶지 않아 뒷담을 하지 않으려 피하니 만남이 점점 줄어들고 불편함이 커져간다. 상대를 위한 걱정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걱정으로 바뀌고 불편한 감정이 쌓여가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동안 가족처럼 걱정하고 아끼던 동생과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조금은 불편함을 주는 언니와 갑작스러운 합석 자리를 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모든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언니를 보며 자꾸만 부끄러운 내 민낯도 타인에게 이런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동생이 남긴 한마디가 뇌리에 박힌다.

저 언니 말은 기억은 안 남는데 감정이 남아.
짜증, 신경질 같은 감정이 남아서 힘들어.

문득 습관처럼 내뱉고 있는 내 한숨이 신경 쓰였다.

그리곤 미안함과 어색함에 괜스레 주절거려 본다.

이 관계도 감정만이 남는 것은 아닐까.. 요즘의 내 감정이 전달된 건 아닐까 걱정되던 찰나 쐐기가 박힌다.

'이제 집에 가서 난 놀 거야~!'

지금까지의 시간이 피곤함과 부담감들이 되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구나 싶어 어서 자리를 파하고 싶었다.

그 아이의 고달픔에 나의 힘겨움을 얹어 준 것 같아 미안함이 커지는 듯했다.


어느 순간 미안함이 쌓이는 관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지금 내 상태가 건강한 상태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회피'.. 사실은 무서워서 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있을 실수도 무섭고, 내 가진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도 무섭고, 다 무서운데 안무서운 척하는 것을 들킬까 봐 계속 끊임없이 회피하고 도망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다 들켜버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안다. 수년 전 같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 쫓긴 느낌.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고 수치스러움과 좌절감에 숨을 쉬기 어려웠던 그 감정들이 오버랩된다.

괜찮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지금을 버텨내면 이내 또 괜찮아질 일이었다. 하지만 지나갈 때까지 얼마나 아파야 했는지도 알기에 그 고통이 겁이 나 더욱 회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이 관계들의 불편함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른 내 남은 잔여 에너지를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태워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그럴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의 평정심을 찾고 여유를 찾으면 아무렇지 않을 일들이다.  

불편했던 지난 과거에 대한 기억을 흐릿하게 블러처리하고 이겨내고 마주했던 감정을 끄집어내 본다.


결국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이 남을 테니까.

이전 16화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