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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Apr 10. 2022

"착하네"는 칭찬이 아니다, 말을 잘 들었다는 뜻이다

칭찬을 가장한 훈육

"얘가 착해서요." 엊그제 점심을 먹던 중 기분이 싸해졌다. 착하다는 말을 듣기 전 내가 한 일이라고는, 두 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열심히 먹은 것. 그리고 후식으로 시킨 뜨거운 커피를 다리에 확 쏟은 뒤 화장실에 들렀다 빠르게 자리로 돌아온 것뿐이다.

하하, 하고 웃었지만 머리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면이 내가 '착하다'는 말을 들을 상황이었지. 갓 나온 커피에 데이지 않았나 걱정되는 상황, 바지와 속옷이 커피로 축축해진 상황을 참고 제자리에 돌아와 식사를 마무리한 것이 착한 일이었나, 짧은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았다.

'착하다'는 말에 내가 가진 반감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착하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선한 영향력'이란 말에도 신중하다. 우리는 착하다는 말은 언제 쓰는가. 초등학교 권장도서라서 읽은 동화 '나쁜 어린이표'에서는 선생님이 정한 규칙을 학생들이 잘 지키면 '착한 어린이표'를 받으며 칭찬받는다. 사회화 중인 아이가 어른의 기준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 양육자는 착하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착하다"는 말 안에는 화자가 청자를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아이고 착하네"를 길게 풀어 보자면, '너는 지금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다'는 평가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는 암묵적인 훈육이다. 착한 선배, 착한 부장님, 착한 선생님, "착하시네요."라는 표현은 "다정한 선배네" "직원에 대한 배려가 일상인 사장님이네" 등과 달리 어딘가 어색하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착하다'는 형용사를 잘 붙이지 않으며, 그렇게 역전돼 쓸 때는 '윗사람이 만만하다'는 뜻이 담기기도 한다.

간결한 표현으로 문장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착하다는 말이 빈번히 권위적이며 화자의 입맛에 맞는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상급자가 보기에 아랫사람이 독려해야 할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에 대해 "착하다"며 길들이기보다 정확하게 그 행동을 평가하고 칭찬해야 한다. 권력이 높아질수록 모든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착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가스 라이팅(gas-lighting)이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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