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물 속에서 뜨거워진 몸을 끄집어내 샤워장으로 들어갈 때 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수영 강습은 조금 일찍 마무리하는 대신, 우리 평영반과 옆 접영반을 섞고 두 팀을 나눠 자유형 릴레이를 한 날이었다. “이럴 때는 숨도 참고 전력으로 달려야 해!” 시작 전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스트로크 한 번에 한 번 쉬던 숨을 대여섯번 참으며 나아갔다. 옆 레인보다 너무 느렸다. 무엇을 걸고 한 내기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하는 경기였다. 그런데도 팀원들이 내가 늦춰놓은 거리만큼 늦게 교대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전력을 다해 더 빠르게 헤엄칠 수 있었어.’ ‘발차기가 너무 느긋했어.’ 우리의 마지막 주자가 엄청난 물보라를 만들며 거리를 단숨에 좁혔고, 두 레인이 비슷하게 들어오며 즉흥 릴레이는 끝이 났었다.
그때였다. 익숙하게 씻으러 가던 발이 살짝 미끄러졌다. 오른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다. 소리도 못 내고 그저 아찔했다. “괜찮으세요?” 내 뒤로 샤워장에 들어가려던 다른 회원님이 묻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바로 못 서겠을 때는 기어서라도 길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겨울 버스에서 내리다 오른 무릎이 꺾였을 때 배운 것이다. 롱패딩을 입은 승객이 넘어져 못 일어나는 것을 백미러로 본 기사님이 차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단차가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차도에 앉아있으면 위험하다”며 내가 인도로 기어 올라가는 것까지 보고 떠나셨다.
샤워기 밑에 앉아서 끙끙 대던 나는 한 사람의 샤워가 끝날 즈음 발을 딛고 일어섰다. 방에 돌아와서는 다리를 베개로 심장보다 높이 받치고 누웠다. 얼린 닭가슴살을 꺼내 와서 냉찜질했다. 지난해 가을 호신술 수업 중에 몸풀기로 가슴 높이까지 점프하다가 오른무릎에서 뻑 소리가 나며 넘어졌었다. 소리가 울렸다며 달려온 조교님이 유도장 가장자리에 나를 눕게 하고 파스를 뿌려주셨다. ‘부상 직후에는 환부를 심장보다 높게 두고 냉찜질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조교님이 잘생기셨던 덕인지 나는 이제 냉찜질과 온찜질을 헷갈리지 않는다.
“혹시 무용 전공자세요?” 오른무릎 부상의 역사가 시작된 지난해 여름, 퇴근길 들른 광화문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물어봤다. 침상에 누워 회당 10만원짜리 충격파 치료를 30분 넘게 참아내던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저 무릎이 두 달 만에 두 번이나 다친 현대무용 취미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전공자냐는 의심을 받기에는 내 몸은 마르지도 근육으로 단단하지도 않아 물렁물렁했다. 전공자가 아닌데 취미로 하다가 다쳐온 분은 처음 봤다고 하셨다. 밥벌이도 아닌데, 이렇게 여러 번 다쳐가면서 취미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철없이 느껴졌다. 그 모든 감정을 뒤로 하고, 무릎 다친 날 찍은 1분 30초 분량의 춤 영상을 선보이며 “정말 재밌다!”고 답했다. 그래, 재미가 있어서 다쳐도 계속하고 싶었다.
지난해 4월, 마포역에 있는 현대무용 스튜디오에서 주 2회 취미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일과 삶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웠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벅찼다. ‘만약 모든 것을 그만두고 서울이 아닌 곳으로 간다면 무엇이 아쉬울까?’라고 질문을 바꿨더니 ‘현대무용을 배워보고 싶다’는 답이 떠올랐다. 수업 3주 차 처음 다친 날 로코모션(locomotion) 시간에 '발을 모아 오른쪽 점프-왼쪽 점프-오른쪽 점프-어깨너비로 점프-180도 점프-180도 점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서 누가 배구공으로 내 무릎 옆을 ‘뻑!’하고 강타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넘게 무릎보호대를 하며 다녔다.
"행복하려고 하는 연애, 재밌지도 않고 괴로울 거면 왜 해?" 권태로운 연애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건강해지려고 하는 운동인데 다치면서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비슷하게 운동에서는 건강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움직이고,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이 시간이 내 체력과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 없이 춤을 추면 좋았다.
오른 무릎을 다친 후 내 일상은 조금 달라졌다. 테니스가 재밌다던데, ‘무릎에 무리 가지 않을까?’ 물어보고는 다음 생에 치기로 했다. 발레, 격투기 같이 무릎을 다쳤던 것과 유사한 운동은 꿈도 꾸지 않는다. "먼저 가실래요? 제 뒤에서 답답하진 않으셨나요?" “아, 힘들어…. 저 먼저 가세요!” 가장 무릎에 무리 없는 운동으로 소문난 수영을 배우면서도 같은 레인 회원들의 선두에 있을 승부욕을 버렸다. 남자 회원보다 여자 회원들이 당연히 뒤로 빠지는 것이 싫고, 주부수영반에서는 근력으로 1등이던 아가씨 회원이었지만 이제는 처음으로 서도 자꾸자꾸 사람들을 내 앞으로 보낸다.
문제는 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내 몸에는 관심이 없으며, 고통을 참는 것은 아주 잘하는 사람인 것이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부상 이후 1년간 두세달 간격으로 현대무용, 캠퍼스 러닝, 호신술, 수영 등 온갖 운동을 하다가 같은 부위를 같은 통증을 느끼며 다쳤다. 다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번에도 또 다칠 것이라는 두려움, 영구적으로 무릎을 못 쓰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걱정들이 무릎에 얹힌다.
나는 여전히 미련하고 내 몸을 아낄 줄 모른다. 무릎을 다친 다음 날 무릎보호대를 차고 골프 수업을 하러 가면서, 교수님께 못 치겠다고 말씀드리려고 계획했다. 그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자연스레 열댓명이 줄줄이 서 있는 스크린골프 타석에 서서 7번 아이언을 휘두르고 있었다. 골프 스윙이 무릎에 안 좋다지만 아직은 골프하다 다친 적은 없다. 공을 맞히고 조금씩 더 먼 거리를 보내는 일은 즐거웠기 때문이다.
반복된 부상이 멍청하다며 후회하면서도, 다치는 것이 겁나서 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확실히 1년 전 현대무용으로 무릎을 다친 후 삶은 많이 불편해졌다. 이제 뻑 하면 오른 무릎을 다치고 정형외과에 다닌다. 스탠딩 공연을 보며 자리에서 뛰는 것도 다칠까 봐 겁이 난다. 수영장에서 몸풀기로 하는 제자리 뛰기도 자체 생략한다. 하지만 난생처음 춤을 배우면서 느낀 ‘계산 없이 즐거운 감각’은 오른 다리를 내어줄 만했다. 움직이며 즐거운 감각을 느끼고 싶어졌고, 부상을 감수하는 각오도 생겼다. 행복의 열쇠가 더 많아졌다.
나는 쉽게 다치고 모험이랍시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사람이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삶은 여행’이라는 클리셰가 정말 맞는다면, 부상과 재활, 그리고 바보같이 반복된 실수를 하고 그를 후회하는 것도 하나의 챕터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