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냉혹한 야구의 맛을 처음 본 두산베어스 팬
올해 새로 생긴 취미가 있다, 바로 야구 보기다. "이겨내, 이겨내!" 팬들도 선수들도 외친다. 공놀이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흥미가 없던 나는 야구팬들은 어떻게 저렇게 긴 시간 경기를 챙겨볼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룰을 알고, 한 팀을 정해 응원하게 되니 생각보다 매 저녁마다 하는 경기가 매번 그렇게 긴박하다. 3 볼-2 스트라이크 풀카운트의 긴장감, 2사 만루 타석에서 긴장감을 넘어서는 압박감을 이겨내는 선수들. 반복되는 역전과 재역전, 9회 말에도 승패가 뒤집히는 끝내기의 짜릿함을 알게 됐다.
애써서 만들어온 취향과 취미들을 제치고, 야구는 나를 찾아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난겨울 대학원 교수님과의 미팅을 처음 시작하면서, 답답하고 아득한 마음이 들 때 최강야구 경기 영상들을 보게 됐다. 계속 눈이 가서 보게 됐다. 최강야구 시즌1 경기를 모두 보고 나서는, 최강야구-두산베어스로 익숙해진 선수들과 윤준호-이승엽이 나오는 두산 스프링캠프 훈련 영상을 찾아보게 됐고 시즌이 시작되며 두산 경기를 이어 보게 됐다.
야수들의 '깡!' 때리며 뻗어가는 시원한 타구, 홈까지 전력으로 내달리는 슬라이딩, 경기가 끝나면 아이싱(icing)이 필요할 정도로 팔을 갈아가며 던지는 150km/h직구와 변화구, 그리고 그 투구를 받아내는 포수의 미트 소리가 좋다. 주 6일 3시간 이상씩 경기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놀랐다. 그런데 그 잦은 경기에도, 한 경기 이기는 것에 환호하고 한 경기 지는 것에 분해하는, 직관적으로 투명하고 뜨거운 감정들이 좋다. 물론 내 팀이 지는 경기는 재미가 없고, 이기는 경기만 재미있다.
야구를 알게 되며 여러 가지로 놀랐지만, 볼 때마다 충격적인 것은 시즌 중 트레이드다. 일요일이나 비 오는 날 빼고 매일 경기가 있는 시즌 중에 선수를 교환하겠다고 각 구단 프런트에서 합의하면, 선수는 오전 중에 통보받아 팀을 옮긴다. 그날 경기에 나서기도 한다. 프로스포츠는 팬덤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를 저렇게 물건처럼 교환해 버리는구나. 구 삼성-현 키움 '원석 아빠' 이원석 선수도 트레이드로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됐다.(자연스레 키움이 두산 다음으로 응원하는 팀이 됐다.)
류지혁 선수, 최원태 선수 등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은 팬들이 그 선수를 계속 그리워하는 모습과 현재 팀에서의 근황은 계속 검색해 보게 된다. 왜일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만 해도 예상 못 하던 청천벽력에도 차분한 결별과 정착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방출-교환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한 선수들이 새로운 조직에 빠르게 적응하고, 혼란 없이 실력을 발휘해 눈도장을 찍고, 새 팀의 동료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 모습이 내게 만족감을 준다. 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전 팀의 팬들, 새로운 선수의 활약을 환영하는 새 팀의 팬들의 트윗에서는 사랑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