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 보는 사이에 대해서
함께 보낸 시간과 나에게 남은 기분이 항상 비례하는 건 아니다. 10대 때 나는 어떤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정작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은 하루도 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일 년에 두어번 만나는 사람이지만 항상 재밌고 즐거운 만남이 있다.
엊그제는 1년만에 만난 후배와 이런 대화를 했다. 일년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가 있다면, 사실 살면서 그 친구를 만나는 건 열 번에서 많아야 삼십번 언저리일 거라고. 같이 일을 하거나 이웃이 되거나 하지 않는 한, 우리가 살면서 나눈 모든 시간을 모아도 보름이 넘지 않을 거라고. 내가 한 말이지만 뱉어놓고 보니 참 묘했다.
가끔 보더라도 10년 20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과, 딱 일 년만 보더라도 매일매일 보고 싶은 마음은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보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참 중요해진다. 가능하면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하고 싶다. 날이 좋아서든, 술이 맛있어서든 양쪽 모두가 그 시간을 여행 같다고 느끼길 바란다.
혼자 산 지 3년이 넘다보니 약속을 잡는 나름의 원칙 같은 게 생겼다. 가능하면 뒤에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
위치는 중간도 괜찮지만 가능하면 그 사람의 동네와 내가 사는 동네를 번갈아 가며 만나고 싶다. 한 번은 그의 동네에서 그가 좋아하는 밥집엘 가보고, 한번은 내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집에 데려가는 게 재밌다.
이동하는 시간에 마음을 두면서 동네와 공간이 간직한 정서 따위를 되짚으면서, 다 죽어가는 이야기와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동시에 나누는 약속.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렇게 있고 싶다"는 마음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말을 계속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