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를 보다가
작법서는 이렇게 말해요. ‘좋은 인물에게는 결점과 결핍이 있다’고. 관객은 어떤 인물의 치명적인 단점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고. 그 인물이 가진 결점과 결핍이 곧 그의 매력이 된다고.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능력은 있지만 싸가지가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죠.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는 과정이 토니 스타크의 주된 성장 서사에요.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의 대가를 치르죠. <김씨 표류기>의 정연은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에요. 관객이 한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럴 듯한’ 결점과 결핍을 부여하는 거예요. 그게 인물과 관객 사이의 통로가 된다구요.
그런데 사람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의 단점에 마음이 가기 시작하면, 정말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잖아요.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거, 매번 걸려 넘어지는 거, 번번히 넘지 못하는 거…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때. 심지어 그 결여와 상처를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요. 결국엔 우리 모두가 결점과 결핍을 나눠 가진 존재들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1인분의 결핍. 1인분의 상처.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인 채, 똑같이 불완전한 타인과 함께, 여전히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아가요. 그 불완전함에 순응하지 않고, 또 쉽게 냉소하거나 미리 포기하지 않고. 이 세계가 정말로 아름답다면 그런 장면들 때문일거야. 희망과 절망의 이분법은 이야기 속에만 있지. 그렇잖아요? 낮에 뛸 듯이 기쁘다가도 밤이 되면 땅을 파고 가라앉는 게 우리의 삶. 누구는 주변만 맴돌고 누구는 떠났고 누구는 돌아왔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잖아요. 안 그래요? 우린 다 얼마간 멍청하고 자주 미련해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아요. 나름 괜찮아요.
<나의 해방일지>를 보다가 들었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