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등굣길에 넘어져서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적 있다.
어딜 가든 쏟아지는 시선과 생활할 때의 불편함 등 두 팔이 부러진 건 분명 큰 시련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아니, 오히려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해 줬다.
부모님 등살에 억지로 다니던 수영을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나는 수영장에 전화해 팔이 부러져 더 이상
수영을 못 나간다고 전했던 그날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 더 이상 수영을 가지 않아도 된다니! 두 팔이 부러져도 좋은 게 있구나 싶었다.
수영과 나의 악연은 평영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됐다.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진도가 많이 늦었던 나는 자유형과 배영을 배울 때도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억지로 배웠었다. 그런데 엉성하게나마 자세를 취하고 앞으로 헤엄쳐 갈 수 있었던 자유형, 배영과 달리 평영을 만난 순간 넘을 수 없는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평영은 개구리처럼 양팔과 두 발을 오므렸다가 펴는 영법으로, 주로 추진력을 발차기로 얻기 때문에 킥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두 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무릎을 굽혀 엉덩이 쪽으로 발을 가져오는 게 평영 킥의 1단계,
발이 엉덩이 쪽에 왔을 때 발목을 바깥쪽으로 돌려 발목과 무릎을 밖으로 벌리며 개구리처럼 차는 게 2단계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봐도 내 발목은 바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물 밖에 나와 W자 앉기 자세부터 해보는데, 발목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돌아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편하게 앉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지 않아 엉덩이가 바닥에 닿지도 않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물 밖에서도 안 되는 자세가 물 안에서 될 리가 없으므로 내 평영 발차기는 누가 봐도 형편없었다.
날 가르치던 수영 선생님은 숏컷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톰보이 스타일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평영 발차기를 할 때마다 발목을 돌려 차라고 무섭게 혼냈으며 급기야 짜증까지 냈었다.
50분 내내 혼나 잔뜩 기죽은 채 집에 돌아온 나는 가족들과 함께 연습까지 해봤지만, 여전히 발목은 바깥으로 돌아갈 기미가 안보였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엄마가 직접 나서 선생님과 따로 면담까지 했지만, 그 뒤로도 선생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는 거 없이 여전했다. 그 당시 나는 감기라도 독하게 걸려 수영 강습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이런 내 간절한 마음을 신이 눈치챈 건지 두 팔 골절이라는 아주 강력한 핑곗거리를 내려주셨다. 그렇게 수영에 큰 트라우마만 얻게 된 나는 '내 인생에서 수영은 영영 안녕이다!'를 외치며
쿨하게 수영과 이별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올해 2월 초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몸무게의 변화가 있었다고 답해야겠다.
여행 가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는데 전날 라면을 먹고 밤을 새운 사람처럼 퉁퉁 부어있는
얼굴과 가슴보다 더 나온 거 같은 배를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수강료가 비싸지 않으면서 접근성이 좋고 땀쟁이인 내가 땀을 많이 흘러도 티가 나지 않는 운동을
찾다 보니 그 많았던 운동 후보 중 수영 하나만 남게 되었다. 수영에 안 좋은 추억이 있던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렇게 물을 무서워해서 어릴 때 바닷가에 가면 돌만 던지며 놀던 동생이
수영을 재미있게 배우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어 그날로 바로 동생과 같은 반에 등록해 버렸다.
요즘 나는 주 3회 아침 8시 수영을 꼬박꼬박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자유 수영까지 하는 진정한 '수영 덕후'로 거듭나는 중이다.
운동 신경이 없고 뻣뻣한 몸치라 내 몸이 수영의 모든 걸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기특하게도 몸은 15년 전에 배운 1년 간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 안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음-파-음-파 숨 쉬며 발차기를 하고 팔을 휘젓는 내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적응이 되니 어느새 물에 자유롭게 몸을 맡길 줄 아는 여유까지 생겼다.
어릴 때 혼났던 기억 하나로 스스로를 '수영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렸고,
내가 생각한 내 모습에 맞춰 물을 멀리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수영을 해보니
여전히 어설프긴 하지만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이다 라고 쉽게 규정짓고 그 모습에 맞춰 사느라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판단짓기 보단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를 떠올리며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