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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Aug 27. 2020

태풍과 유리창과 불면증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18

사람이 걸을 수도 없을 정도의 강풍-태풍이 다가오니 대비하라는 뉴스를 들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언제 올지 몰라 뉴스에서 하라는 대로 창문들을 꼭꼭 닫았더니 너무 더워 더 잠이 달아난다.

유튜브로 실시간 특보를 틀어본다. 이미 태풍의 중심부는 지나간 듯하다. 다시 베란다 창을 열고 에어컨을 틀으니 좀 살 것 같지만, 새벽 4시... 이미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다. 요 며칠 갑작스러운 코로나 19 확진자 폭발 추세에 태풍까지 올라온다는데, 하필 아이들 등교일이 내일이라 어제부터 불안한 마음에 이틀을 꼬박 지새운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 마음은 모른 채  세상모르고 자고 있고.


문득 바람을 막고 있는 베란다 창문이 엄마인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깨지기 쉬운 유리지만 집안에 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연약한 자신의 몸으로 강풍을 막아내고 있다.  내가 깨져버리면 아이들이 그 파편에 맞아 다치고, 거센 바람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 유리도 두려워 밤을 지새운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문에.


아이들을 키우며 몇 번이나 이렇게 뜬눈으로 긴 밤을 새웠을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가였을 때 나오지 않는 젖을 먹이느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쉬지 못하고 애태우며 새벽을 맞이한 날이 며칠이었는지.  


 돌이 지나 젖도 못 뗀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을 때.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에 엉엉 울고 매달리는 아이를 맡기며 또 여러 날을 가슴 아파 잠 못 이뤘다.

가기 싫다고 울며 보채는 큰 아이를 달래느라 안고 가다 넘어졌는데, 안고 있던 아이가 다칠까 봐 무릎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양 무릎이 까져버린 적도 있었다. 하필 그날 치마를 입어 까진 무릎이 흉하게 보였지만 급한 재판에 출석해야 해서  왕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채 법원으로 뛰어갔던 기억. 법원 복도에서 만난 지인이런 나를 보고 결혼 전과 후에 이미지가 너무 달라졌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돼 재택근무, 파트타임을 했을 때, 낮에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일을 못해 매일 애들을 재운 뒤 새벽 3-4시까지 일하며 밤을 새웠다.


둘째는 큰 아이와 달리 낯도 안 가리고 순해 어린이집에 간 첫날부터 방실방실 적응을 잘했다. 기쁨도 잠시, 6살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경련을 일으켜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 아이가 죽은 줄 알고, 숨을 못 쉬어 뇌가 다치진 않았나 하고... 심장이 조여오던 그 밤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때처럼 심장이 아프다. 그 후 내가 잠이 든 사이에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뜬눈으로 여러 밤을 새웠다. 아이가 숨은 쉬고 있는 건지 몇 번씩 확인하면서.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밤에 습관적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듯하다. 내가 유난스러운 건 아닐 거고 아마 엄마들은 다 비슷할 것이다.


유리처럼 연약하기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는 엄마인 나. 병아리 같은 두 아이들은 이런 연약한 나를 의지하며 세상 걱정 없이 잠을 잔다. 내가 깨져버리면 아이들이 그 파편에 맞아 상처 받으니까 내가 깨지지 않게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연약하지만 또 강한 엄마인 나. 아이들이 거센 강풍을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새워야 할 테지.


래도 생각보다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 다행이다. 노잼 도시라 재난도 비켜간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에어컨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나도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해봐야겠다. 이제 큰 아이는 사춘기가 되어 더 이상 엄마가 출근할 때 지 않는다. 이제 작은 아이도 편안히 잘 잔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등교도 중지되고 돌보미 아주머니도 못 오시는 상황에서, 둘이 도시락을 까먹으며 숙제를 하며 빈 집을 씩씩하게 잘 지킨다. 고맙다. 깨지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히 숨 쉬며 깔깔 웃으며 자라주어서. 너희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다.


#태풍으로 피해 입으신 분들의 조속한 피해회복과 복구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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