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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Mar 29. 2019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신 선생님 같아요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17

초등 두 아이 상담을 다녀왔다. 둘째 담임 선생님은 주로 학습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셨다.


아이가 좀 느린 것 같아요. 좋게 표현하면 순진무구하다고 할까요? 시험 볼 때 모르는 게 있으면 해맑게 안 풀고 넘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질문을 하면 한참 생각하다 늦게 대답하고요. 지금은 아직 2학년이라 괜찮지만 학년 올라가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는요.


맞다. 이 동네는 강남에서 엄마들이 공부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동네이다. 직장에서 가까워야 아이들 케어가 가능한 육아 독립군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학원도 안 보내면서 말이다. 특히 둘째는 몸이 안 좋은 데가 있어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푸시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가자고 마음먹은 터였다.


다만 얼마 전 지방으로 취업하게 되어 아이들을 전학시킬 예정이었기에, 전학 갈 사람한테도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 생각하며, "네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시킬게요" 하고 나왔다.


큰 아이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작은 아이 선생님과는 성향이 정반대이시다. 남자 선생님이신데, 한 달 밖에 보지 않은 큰아이의 성향을 아주 디테일하게 파악하고 계셨다. 학습적인 면은 기본 태도가 좋다는 단 한 마디만 덧붙이셨다.


공개수업 때부터 남다르셨던 선생님이셨다. 모둠활동 때 작은 캠으로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촬영하며 실시간으로 방송처럼 tv 화면으로 보여주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셨다. 고민을 비행기에 적어 선생님을 향해 날리라고 하며 자신의 몸을 날리셨다. 학급규칙과 상벌은 아이들 스스로 정하게 하셨다.  또 학급 밴드를 개설해서 유치원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사진을 주말마다 올려주셨다. 이 학교에 작년에 부임하셨는데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초5학년 아이들에게  놀이수업을 콘셉트로 하겠다고 천명하셨다.


큰 아이는 긴장과 불안이 많은 성격이다. 내가 직장에 나가야 했기에 돌이 조금 지나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내긴 했지만, 거의 1년의 적응기간이 걸린 아이이다. 출근할 때 치마를 입은 채 울고 불며 매달리는 아이를 안고 가다 철퍼덕 넘어졌는데,  아이를  보호하려다 내 양 무릎이 다 깨져서 치마 밑으로 왕반 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출근하기도 했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첫날은 많이 긴장하고 불안해했고, 공개수업 때마다 그 모습이 눈에 띄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선생님의 자유롭고 따뜻한 교육방침 덕분인지, 공개수업 때 처음으로 엄청 크게 웃고 반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선생님 밑에서 1년을 보낸다면 아이가 많이 밝아지고 마음도 쑥쑥 자랄 것 같았다. 그래서 전학이 더 아쉬웠다.


선생님, 이런 말씀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수업하시는 모습 보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선생님을 뵙는 것 같았어요. 아이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전학 때문에 많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데, 선생님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 주시고 격려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지시면서 오늘 힘주셔서 감사하다고, 잠도 못 잘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내성적이긴 하지만 배려심이 많고 착하기 때문에 어딜 가든 잘할 거라고 해주셨다. 정말 섭섭하고 아쉽다고도 하셨다.


학습적인 면이든 정서적인 면이든, 아이를 세심히 관찰해 주시고 도움 말씀을 주시는 선생님들이 감사했다. 전학 가서도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몸과 마음이 건강히 쑥쑥 자라기를.


돌담 사이를 비집고 자라나는 풀줄기처럼, 아이들은 틈새 속에서도 자라난다. 시험기간에 보던 벚꽃이 더 아름답듯이, 아이들에게 미세먼지 속에 가끔 드러내는 푸른 하늘이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 엄마인 내가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 주긴 어렵겠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자라게 될 아이들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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