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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Aug 13. 2022

에세이집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서재에서 우연히 존경하는 김형석 교수님의 '예수'라는 책을 꺼내 읽었다. 그런데 책 뒷면에 원고를 모집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마침 조각조각 써놓았던 글들이 꽤 모이고 있어 적혀 있던 이메일로 보내보았다.

며칠 후 031로 시작되는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길래 스팸전화려니 했는데, 출판사 대표님이 통화를 원한다고 문자를 남기셨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원고에 흥미가 간다며, 다만 시중에 에세이로 출판하려면 좀 더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보낸 원고는 사실 위주의 이야기인데 거기에 내 이야기가 더해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는 뉴스를 봐도 된다고 말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읽고 싶어 하는 것은 '내 이야기', 즉 그 사실에 대한 내 느낌과 감정, 내 생각이라는 것이.


"아! 그렇군요...!"


순간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분명 사건에 대한 내 감정과 느낌이 있었을 터인데, 그걸 애써 숨긴 채 글을 써왔던 것이다.


대표님은 의사 같은 전문가들의 글이 대부분 그렇다고 다.

그러니까 그건 아마도 20년간 단련된 직업병 같은 것다. 일에 내 감정과 느낌을 개입시키지 말자는 처절한 싸움 같은 것!


"그럼 제가 솔직해져야 하는 거네요?"

"그렇죠"

"용기를 내야 하는 거고요?"

"네. 하하"

"아... 노력해 볼게요."

"음, 노력보다는, 뭐랄까... 내려놓으면 될 거 같아요~!"

"아, 저한테 정말 필요했던 이야기네요"


이런 선문답 같은 대화를 했는데, 뭐랄까 글을 쓰고 안 쓰고를 떠나, 내 삶에 뭔가 큰 도전 같은 깨달음이 온 것 같았달까.


2주 후까지 수정 샘플을 드리기로 하고, 계속 끙끙 앓았다. 역시 '프로 감정숨김러'가 내 이야기, 에세이를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느꼈다. 작년에 실무 서적을 써서 출판하긴 했지만 에세이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이걸 쓰면서 꼭 출판을 해야 하나, 사실 그냥 지금처럼 페북이나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되는데... 고민도 많이 해 보았다.


'도저히 못쓰겠더라고 문자 남기고 줄행랑칠까? 한 번 창피하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지?'


처음에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지? 생각해보니, 싸이월드에 '법정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새내기 변호사의 일상을 올렸던 게 시초였던 것 같다.


ENFJ, 감성형 성격이다 보니, 일을 하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거나, 감정이 정리되지 않거나 할 때, 소소하게 글을 쓰면 그 감정이 해소가 되었고, 지인들이 즐거워해 주고 공감해 주면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아니 아니, 그보다 더 전에, 대학 때 학회 낙서장, 그리고 고시실 여학생 휴게실 낙서장에 끄적인 글들이 시초였을지도...


아무튼 글을 쓰는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누구를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주려함도 아다.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된 것이고, 거기에 누군가 반응해 주는 게 좋아서였다고 정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꼭 출판을 하지 않아도 된다가 정답일 것 같다. 표현과 소통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정식 출판보다  SNS가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니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마음을 다잡으며 쓰고, 또 쓰고..  (네, 저는 ENFJ-'계획형'입니다) 이제 더 영 끌을 해보아도 뭐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가 되자 한 꼭지 분량의 글이 겨우 완성되었다.


약속 하루 전날, 

'에라 모르겠다.'

냅다 메일을 보냈다. 순전히 나 편하자고 보낸 거였다. 두 발 뻗고 자려고.


그런데 황송하게도 이런 문자를 주셨다.


"선생님, 에디터들이 읽고 막 가슴이 뛸 때가 있어요^^ 이거다 싶은... 직감적인 막... 그런...ㅋ

그런 원고는 보편적으로 결과도 좋아요.


지난번 전화로 제가 드린  두서없이 장황한 이야기를 정말 오만 프로는 잘 이해하고 글을 써 주신 것 같아요."


 뒤로 에세이와 사랑에 빠졌다. 주말마다 한 두 꼭지씩, 살림과 육아를 밀쳐두고 써 내려갔다.

그게 참 도저히 못 쓸 거 같은데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또 써지곤 했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정지우 작가님께서 무조건 쓰라고 하신 게 이래서인 듯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월간으로 원고를 출판사 대표님께 보냈다. 대표님은 초짜인 를 잘 다독여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인상적인 구절들을 나눠 주시곤 했다.


대표님의 격려에 힘입어, 드디어 6개월 만에 에세이 원고가 완성되었다.

절반 정도는 지금 하고 있는 "민사조정"에 대한 이야기로, 절반 정도는 10년 동안 해왔던 "소년재판 국선 변호"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 보다.


그동안 브런치 앱에서 작가님 글 써달라고 끊임없이 알림이 오더라. 이실직고하면 책 원고에 집중하느라 그랬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 변호사들이 쓴 에세이가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변호사들이 쓴 에세이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원고는 넘겼지만 책을 출판하기까지는 약 두 달 정도는 더 걸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런 관심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공감해줄 그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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