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변호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by 찐니

얼마 전 갑자기 "임** 변호사"라고 입력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단 반갑게 받았는데 누군지 언뜻 기억이 안 났다. 인턴이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저 임**변호사예요. 예전에 재판 상대방으로 뵈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아~ 생각났다!

5년도 더 된 사건이었다. 재판 상대방으로 새내기 여자 변호사님이 출정하셨는데, 정말 열심히 똘똘하게 변론을 잘해서 엄청 인상 깊었던 기억. 게다가 예쁘시고. 그래서인가, 재판장님이 자꾸 더 얘기해 보라고 편들어 주시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났었는데 (아줌마라 미모에서 밀림)

아무튼 결국은 내가 이겼다.


최근에 무슨 승소 판결 기사를 보고 내 이름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변호사님, 그때 저는 진짜 첫 재판이라 엄청 떨렸는데 첫 상대방 변호사님이 여자 변호사님이고 씩씩하게 변론하셔서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지 하고 감명받았었어요"


"호호. 그래요? 우리 서로 반했던 건가요? 아우. 저도 반했었잖아요."

우리는 서로 이렇게 너 왜 이렇게 예뻐? 아냐 네가 더 이뻐 류의 닭살 돋는 대화를 나누었다.


임 변호사님은 그 뒤로 내 카톡 프로필도 보고, 기사도 찾아보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여전히 씩씩하게(?) 열심히 잘 살고 계시는구나 했다나. 후배님이 선배를 이리 기특하게 봐주니까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던 20년 전에는 젊은 여성 변호사가 드물었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인 28세에 변호사가 되었기 때문에 혼자 법정에 나가면 눈에 띄었다.


두꺼운 서류봉투를 들고 사무실 차에서 내려 법원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사모님이 젊으신 것 같은데 왜 법원에 가요? 이혼하러 가는 거예요?"

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또, 정장을 입고 국회 간담회에 가는 나를 보고는 "로비스트냐?"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더란다.


한 번은 소송 상대방으로 만난 할머님 두 분이 재판 끝난 후,

"근데 변호사님은 결혼하셨수?"

물어보셔서 안 했다고 했더니,

"거봐. 내가 맞았지?"

하신다. 알고 보니 두 분이 내가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내기를 하셨다는 거다.

귀여우신 할머님들 덕분에 한참 웃었다.


반면, 연차가 어릴 때 소송 중에 작은 실수를 했을 때가 있었는데, 상대방 변호사님이,

"외모에만 신경 써서 그런 거 아니냐"

고 비아냥 거리셔서 기분이 무척 나빴던 적도 있었다. 꾸밀만한 외모도 아니어서 어이도 없었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은 젊은 여성 변호사가 넘쳐날 뿐 아니라, 최근에는 매년 과반수 이상이 여성 판사, 검사로 임용되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우영우 변호사가 대선배인 태수미 변호사의 변론 모습을 보며 상대방 변호사이지만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대로, 태수미 변호사는 예전에 우영우 변호사가 작성했던 의견서를 보며 인상 깊었다고 하고.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반하기도 하고, 닮고 싶어 하기도 하며 성장하고 있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멋진 선배님들과 파이팅 넘치는 후배님들이 많아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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