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을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들을 돌보며 사셨던 폴 김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목사님은 미국 LA에서 정신건강가족 미션(www.mhfmus.org)의 소장으로 일하고 계시다고 한다.
겉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족을 학대하며 정상인 척 살아가고, 선량하고 마음 약한 피해자들이 오히려 정신질환자가 되어 가는 현실, 그리고, 이들을 보호해야 할 교회에서 오히려 소외시키며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여러 해 전 서울 가정법원에서 아동학대 피해자 국선 변호사로 일한 적이 있다. 만 19세로 법적으로는 성년이었지만, 심한 강박증 증세가 있어 자기 방에서 쓰레기를 잔뜩 쌓아두고 살아가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부모들은 이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와 정신적 지지를 제공해 주는 대신, 무당을 불러와 몸을 때려가며 굿을 했다. 지능은 뛰어났던 이 아이는 인터넷을 검색해 법원에 보호 신청과 분리 요청을 했다.
아이는 부모님과의 만남을 거부했지만,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계속 찾아다녔다. 쉼터를 알아내 찾아가자 아이는 쉼터를 탈출했다. 겨우 보호기관에서 아이를 찾아내서 지원기관과 연계해 작은 원룸을 얻어 주었지만 아이가 혼자 살아갈 방법이 막막했다.
아이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몰래 기관 등을 통해 아이에게 생활비라도 주려고 했지만, 아이는 돈을 받으면 다시 부모와 연결된다며 모든 지원을 거부했다.
심리기일에 법원에서 아이를 만났다. 아이 의사를 존중해 미리 아이와 부모의 심리 시간을 달리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드렸다. 그런데, 아이가 나 있는 쪽으로 오다가 갑자기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나는 놀라서 얼른 따라 달려갔다. 아이는 1층으로 내려가 여자 화장실에 숨었다.
나는 나한테서 도망치는 줄 알고 계속 아이 이름을 불렀는데, 아이는 한참 대답도 안 하고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앞에 아빠가 있었어요. 저 지금 여기서 못 나가요. 절대 안 만날 거예요."
아빠가 어떻게든 아이를 보려고 시간을 어기고 미리 법원에 나오셨던 것이다. 내가 미리 아빠를 만나 멀리 가시도록 한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설득하고 아빠를 만났다.
아이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셨다.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생활비라도 보내달라고 말씀하셨지만 피해자 국선 변호사 입장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를 겨우 돌려보낸 후 아이를 설득해 심리를 진행했다. 아버지에게 일정한 교육명령 등 처분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내려지는 처분보다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걱정이었다.
아이와 연락하고 있는 보호기관에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드리고, 앞으로의 일을 잘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
실제로 여동생을 통해 죽음까지 생각한 고통을 겪으신 폴 김 목사님이시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신 내용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고통에는 꼭 숨은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고통의 터널을 지나시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힘들지만 이 고통의 의미를 찾으면서 지나가십시오. 어려운 싸움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픈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