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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Nov 17. 2022

수능 전교 1등, 그 이후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 방송반이 생겼다. 친구들과 우르르 가서 면접을 보았고 pd 겸 engineer로 합격을 했다. 방송반 선생님이 지명하시는 바람에 얼결에 방송 반장까지 되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그러나 가끔은 엉뚱한 모범생이기만 했던 나는, 생애 처음으로 친구들과 대본을 써보고 선곡을 하고, 축제 때는 밤늦게까지 깜깜해진 학교에 남아 방송제를 준비했다. 방송반 1기였기 때문에 방송제를 할만한 장비가 없어 이웃 남고 방송반 친구들이 야밤에 몰래 리어카 가득 장비를 날라다 주었다. 그때 전교조였던 총각 국어 선생님이 리어카를 끌어주셨었다.

방송극에서 남는 자투리 역할들을 맡았는데, 아빠가 전라도 출신, 엄마가 경상도 출신이신 바람에,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가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가 했더니,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생애 최초로  무대에서 느껴본 짜릿함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뭔가를 완성한다는 것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뜨거운 가을이 지나가더니, 언니들이 수능을 본다고 했다. 방송제 준비로 성적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모든 걸 뒤로 하고 처음부터 시작이란 맘으로 오직 수능만을 향해 돌진했다.

결론적으로 수능성적은 완전 너무 잘 나왔다. 아마도 그 뜨거웠던 가을, 내 안의 열정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게 성적면으로 효과를 본 것 같았다. 난 할 수 있어! 그런 것?

그런데 성적이 좋은 게, 그것도 갑자기 좋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학교와 학과, 선생님이 원하시는 학교와 학과가 모두 틀렸다. 나는 어느새 뜨거웠던 1년 전의 열정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지 못한 채, 그냥 등 떠밀려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고 말았고, 그 이후 몇 년간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이유 중 하나로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더 쉽게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진로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고 있는 사춘기 같은 40대를 지나고 있는 나로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공부하는 일은 결코 늦은 시기라는 게 없는 것 같다. 꿈을 좇기를 유예하고, 무작정 점수부터 높이 따놓고 보는 방식은, 당장은 부모님과 나 자신을 안심시켰지만, 길게는 삶의 방향성을 잃는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는 것과, 의미 있게 산다거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정말 다르다!

아이들에게만은, 영어 수학학원 레벨테스트를 못 봐도, 영재원에 못 들어가도, 단원평가를 못 봐도, 내신이 안 나와도, 수능을 못 봐도, 괜찮다고, 다음 기회가 또 있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신앙(신념)을 지키고, 가족과 친구와 약자를 사랑하며, 인생의 꿈을 발견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 무엇보다 계속해서 성숙해 나가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는 항상 네 편이라고 이야기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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