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극장에서 영화 <영웅>을 보았다. 한국판 레미제라블 느낌? 뮤지컬이 원작이라선지, 연출의 힘인지, 노래의 힘인지 늘어지지 않고 꽉 찬 두 시간이었다. 초5 딸도 너무 좋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알던 독립투사로서의 모습보다 천주교도로서의 고뇌와 철학을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토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한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군 대장으로서 동양평화를 어지럽히고 조선의 독립을 저해하는 이토를 처단한 것이니 나는 일반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이다"
이토히로부미의 죄목을 따발총처럼 노래하며 누가 죄인이냐고 묻는 재판장면과 그 후 어머니의 편지씬은 그냥 최고! 손수건 준비하고 꼭 영화관에서 보실 것을 추천한다.
영화 <영웅>을 본 후, 안중근이 수감되었던 뤼순교도소의 일본 헌병 간수와 안중근 사이의 우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치바 토시치는 안중근이 사형을 당할 때까지 그의 의국지사로서의 당당한 논리 및 주장과 신앙인으로서의 따뜻한 품위에 감화받아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중근은 사형직전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마지막 유묵을 치바 토시치에게 남겨주는데, 그는 일본에 돌아간 후에도 죽을 때까지 안중근의 위패를 모셨고, 그가 죽은 후에는 부인이, 부부가 죽은 후에는 인근 절의 주지인 사이토 타이겐이 제를 올리고 있다. 안중근의 유묵은 우리나라로 반환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내 마음의 안중근>은 바로 사이토 타이겐이 치바 토시치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와 사료들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다.
손가락을 잘라 피로 독립운동을 맹세한다던지, 이토 히로부미를 단발에 저격했다던지 하는 사실 때문에 무력항쟁을 한 독립투사로서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는데, 영화 <영웅>에 이어 이 책을 읽으면서 늦게나마 안중근의 여러 면모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군부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함께 동양평화를 만들어갈 선량한 이웃으로 여겼고, 나아가 유럽연합과 유사한 한중일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사형수와 간수로, 천주교도와 불교도라는 장벽을 넘어, 두 사람이 그 짧은 만남만으로 생사를 넘는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안중근, 그리고 치바 토시치, 두 사람이야 말로 미움과 용서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표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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