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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니 Apr 28. 2019

조정실 풍경

우리가 서로 화해하기까지 1

지방 한 법원의 조정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법정과 달리 조정사건은 굳게 닫힌 조정실 안에서 원고(또는 신청인), 피고(또는 피신청인), 조정위원 삼자 간에 진행된다. 조정실에선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다만, 실제 진행되고 있는 사건인 만큼, 조정절차가 종결된 사건들에 한해,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은, 각색 이야기임을 전제한다.



아파트 매매계약이 파기되어 매도인이 계약금 돌려주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니, 매도인이 매수인 쪽에 계약금을 돌려주고 화해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매도인과 함께 오신 변호사님께서,  "조정위원님 같으면 그렇게 조정하겠냐"면서 버럭 화를 내신다. 매도인이 집을 팔지 못해 잔금을 못 받은 고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대출이자를 계속 내고 있는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논리다. 매수인 쪽에서 소송을 거는 바람에 변호사 비용도 들었고.

순간 당황했으나, 옆에 계신 당사자분 앞에서 변호사님 면을 세워드려야 할 것 같아, "참 열심히 싸워주시는 좋은 변호사님"이신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씀드렸다. 또 소송 가서 열심히 싸워 보시라고 권해드리며, 어쩔 수 없이 조정불성립 처리를 했다.




조정절차로 이행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처음부터 비용도 저렴하고 절차도 간단한 조정사건으로 신청하는 경우, 그리고 처음엔 일반 소송으로 진행하다 담당 판사가 서로 타협하고 양보해서 화해해 보라며 조정절차로 사건을 보내는 경우.  


후자의 경우 일방 당사자나 변호사가 타협을 원하지 않을 때는 조정절차에 비협조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소송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3 심제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소송 상대방이 원하면 본인은 원치 않더라도 두 번의 재판을 더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소송비용이 더 들게 된다. 게다가 재판이 걸려있다 보면 아무리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더라도 생업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선 상대방에게 금전적으로 조금 양보하더라도 사건을 일찍 종결시키는 것이 실익이 있을 수 있다. 돈을 몽땅 변호사에게 줘버리는 한이 있어도 상대방에겐 한 푼도 못주겠다는 억한(?) 심정을 먹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체적 분쟁해결수단(ADR)이 발전 단계이지만 앞으로 조정, 중재 등 소송을 대체할 수 있는 절차들이 늘어날 것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분쟁을 해결하는 윈-윈 전략도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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