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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개비, 인생의 딱지 덩어리들

파도 위에서 흩어지는 우리의 여정은 배 밑바닥에 남아있었다

by RNJ



내가 해군에서 복무할 때 군함이 수리를 위해 도크(건선거, 배를 수리하는 곳)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난 한 군무원과 나눈 이야기이다.


"어이 수병! 배 밑에 저게 뭔지 알아?"

정비창 군무원은 나이가 족히 40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였고, 나는 당시 갓 일병을 단 새내기 병사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보다 경험이 적거나 어린 남자에게 무엇인가 가르쳐 주려는 욕구가 강하다(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집에만 들어가면 말이 없어지는 우리 남자들이 유일하게 신나서 말을 하는 몇 안 되는 특별한 순간이 아닐까.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따개비잖아요. 죽도록 까내야 하는."

"나는 따개비를 보면 저 배가 얼마나 부지런히 돌아다녔는지 알 수 있어."

나는 아재 농담을 하시는 줄 알고 웃음을 일발 장전하고 기다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출항을 하지 않는 배 밑에는 따개비가 엄청나게 붙어 있거든."

"우리 배는 어떤 거 같아요?"

군무원 아저씨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직접 배를 탄 너를 앞에 두곤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며 가볍게 웃었다.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를 자세히 보면 배 밑에 따개비나 해초 따위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선거에 올라온 배를 직접 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우리가 보는 배는 수면 위에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큰 여객선이나 군함을 타보면 지하공간이 얼마나 방대한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타던 군함도 객실의 개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배였고 특히 지하층은 미로에 가까워 신병들은 길을 잃기 일쑤였다. 큰 배일수록 수면에 잠겨있는 부분이 보이는 부분보다 많으며, 이 넓은 공간의 겉표면에는 항구에 가만히 정박하는 동안 따개비와 같은 해상생물들이 줄줄이 자라난다.


반대로 말하면 가만히 있지않고, 많이 움직이는 배일수록 바닥에 들러붙은 따개비가 적다는 의미이다. 배에게 있어 따개비는 게으름의 흔적이자 부지런함의 반대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리를 앞두고는 출항이 잦지 않았던 우리 배였지만 오랜 시간 동해바다와 남해바다를 헤집고 다닌 탓에 배 밑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우리 배는 부지런히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도크를 지나다니는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 배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배였구나!'라고.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부끄러운 과거를 내보여야 하는 공간이 바로 도크였다. 반대로, 어떤 배에게는 부지런히 바다를 향해한 노고를 인정받는 시상식의 단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도크난간에 기대서서 이름 모를 군무원 아저씨와 함께 배 아래를 오랜 시간 바라봤다. 수많은 출항을 견뎌낸 군함이 대견스러웠냐고? 아니, 저 큰 배를 깡깡이질 할 생각에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군무원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잠시 후 나보고 담배 한 대 피러 가자고 하신 것을 보니, 아마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개월 동안의 도크에서의 시간은 힘들고 춥고 외로웠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자 때론 잡생각들을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훌훌 벗어던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춥고 외로운 도크에서 하나 배운 것은, 언젠가 우리도 고장이 나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장 나는 것이 두려워 어떤 곳으로도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면, 수면 아래에선 따개비가 득실득실 자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물쭈물 대다 갑자기 긴급하게 출발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게을렀던 배들은 앞으로 쉽게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수면 위의 겉모습은 번드르르할지 모르지만 배에서 가장 중요한 배의 하부와 스쿠류는 이미 따개비들로 덕지덕지 뒤덮여 조금씩 무거워지고, 이로 인해 자신의 원래 속도를 내지 못한다. 안그래도 끌고 나가기 힘든 수천 톤 철 덩어리에 반갑지 않은 손님들까지 무게를 더하고 있으니 쉽게 앞으로 나아갈 리가 있을까.


따개비가 가득 달라붙은 배일지, 따개비가 미처 자라지도 못하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배인지는 도크에 올려놓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배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따개비가 부끄러운 것을 알기에 자신의 가장 깊은 곳, 남들이 볼 수 없는 수면 아래 숨겨놓고 살아가는것 같다. 바다 위에 뜬 채로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린 서로의 따개비를 볼 수가 없다. 굳이 겉에서 보이지 않는 치부를 드러내어 스스로를 매몰시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뒷면에 따개비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따개비가 붙어있는지가 정도가 아닐까?

우리는 가끔 스스로의 실수로 인해 난처한 상황을 맞이하고 우리를 향하는 타인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직면할 순간이 없지 않을까? 때론 우리는 도크에 올라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의 흔적을 모르는 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보여야 할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순간의 부끄러운 감정을 눈 딱 감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도크 위는 우리의 문제를 확실하게 직면하게 되는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영어 crisis는 우리말로 '위기'라는 뜻이다. crisis의 어원인 'krinein'은 어떤 상황이나 질병을 판단해야 하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회복과 죽음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을 바로 위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위기는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반등을 이뤄낼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을 좋지 않은, 부끄럽기만 한 순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반등의 기회이자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요즘 세상을 보고 있으면 도크에 올라간 따개비가 가득 달라붙은 배 한 척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무엇인가 해야 하는 한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쉬쉬하고 애써 모른 척하던 배 밑에 달라붙은 따개비들이 세상에 훤히 드러났을 때,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멈춘 채로 망치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따개비를 떼기 위해 망치를 쥔 손에 너무 과한 힘을 주어선 안된다. 거센 망치질에 혹여나 배에 구멍이라도 뚫리게 된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 우리는 멈춰 있어야 하기에, 적당한 힘으로 콩콩콩 따개비들을 벗겨내야 한다. 그 묵은 때들을 다 벗겨내고 새로이 페인트를 칠한 뒤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항상 진통을 겪으면서 발전해왔기에 나는 이 시끄러운 세상도 우리가 변한고 있는 성장통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망치를 쥔 손이 아파오고 쇠가 부딧히는 소리에 귀가 따갑지만 배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참아야 하는, 잠시 감내해야하는 힘들지만 귀중한 순간도 있다.




수개월간의 수리가 끝난 후 도크에 물이 들어차고 우리는 다시 바다로 떠났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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