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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햄버거를 준다고?

훈련병들이 종교활동에 열광하는 이유

by RNJ


오늘은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주제 1, 2위를 놓치지 않는 나의 '군 시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혹시 유튜브나 SNS를 통해 군대 훈련소 종교활동 영상을 본 적이 있나요? 머리를 빡빡 민 20대 청년들이 반주에 맞춰 율동을 하며 목놓아 찬양을 부르는 장면,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쉽사리 잊히지 않을 충격적인(?) 영상이었을 텐데, 오늘은 그 현장에 있었던 산증인으로서 그때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고자 한다.


출처 : 맥도널드 홈페이지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현역병 판정을 한국 남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일부를 국방의 의무를 수행며 보내게 된다. 군 복무 중에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 참 많았지만, 23개월 군생활 중에서 훈련병 기간만큼 간 떨리는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쓴 교관들의 매서운 눈빛과 유격체조를 할 때 울리던 호각소리는 아직도 쉬이 잊히질 않는다(잊을만하면 꿈에 찾아오곤 한다. 전역한 지가 몇 년인데!). 6주 동안 땅에서 구르고 물에서 헤엄치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는 수동적인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바로 종교활동.


내가 훈련받은 해군 훈련소는 일요일 아침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세 종교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 열심히 교회를 다녔든, 절을 다녔든, 성당을 다녔든, 무교로 살았든 훈련소에선 일요일마다 모두 독실한 종교인이 된다. 훈련소에서 종교활동을 가지 않는 사람을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는데 이유는 바로 '사제 음식' 때문이었다. 맨날 군대 짬밥(군대 밥을 속되게 이르는 표현)과 퍽퍽한 건빵만 먹다가 만나는 초코파이와 콜라 햄버거의 맛은... 차마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속세)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아니, 그러면 종교활동을 선택하는 이유가 고작 음식 때문이냐고? 물론이다. 목사님 아들과 손잡고 절을 찾아가는 곳이 바로 훈련소 종교활동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종교 대통합의 현장을 보고 싶다면 조심스레 입대를 추천한다(응?).


이전에 교회를 오랜 기간 다녔던지라 첫 주에는 자연스럽게 개신교 예배에 참석했다.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 속에서 정신없이 찬양을 부른 후, 간식으로 받은 딸기 몽쉘[딸기 몽쉘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군 생활할 때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자그마치 '논산'딸기가 포함되어 뼛속까지 군대 보급품 티를 팍팍 내는]은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었다. 거기에 탄산 가득한 콜라까지, 종교활동이 이런 것이구나! 할렐루야!


훈련소의 별미 딸기 몽쉘 출처 : 롯데제과


신나는 종교활동을 마치고 생활관에 복귀한 후, 절에 다녀온 동기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법당에선 법회를 누워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둘째 주부터 종교 쏠림 현상이 심화되었다. 해군 훈련소에선 취침시간 외에는 침대나 바닥에 누울 시 단체 얼차려를 받았기에 누워서 몽쉘을 먹으며 쉴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주에도 함께 예배드리기로 약속한 군종목사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절을 향해 나아갔다(무심한 남정네들...). 동기들과 법당 바닥에 누워 늘어지게 한숨 자고 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식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한 불쌍한 중생들을 바라보며 스님은 천청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오늘은 초코파이, 몽쉘이 없습니다


우리는 0.1초 만에 잠에서 깨어나, 뜨악한 표정으로 스님을 바라봤다. '아니, 우리가 너무 대놓고 잤나? 이럴 거면 교회를 갔지!' 웅성대며 비통에 빠진 중생들을 바라보며 스님은 씩 웃으시면서 비장의 카드를 빼드셨다.


오늘은 불고기버거입니다!



하, 그때의 열띤 함성이란. 도 모르는 사이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절에 오길 잘했지', '거봐 나 따라오라 했잖아.'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덜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불고기버거를 받아 들고 최대한 크게 입을 벌려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촉촉하고 기름진 패티와 달콤한 데리야끼 소스의 절묘한 조합에 '아 극락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신없이 햄버거를 먹는데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동기에게 햄버거를 가르키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야, 여기 절 아니냐?


동기들과 정말 신나게 웃었던 것 같다. 절에서 주는 햄버거를 세상 어디에서 맛볼 수 있겠는가! 처님의 은혜는 교리를 넘어서는구나 하며 동기들과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생활관에 복귀한 후 불고기버거 얘기를 꺼내니 교회를 다녀온 아이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주부터는 같이 절에 가자는 말에 교회에 다녀온 동기들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다음 주에 교회에서 싸이 버거 준데



우리는 다음 주 다시 교회로 돌아갔다. 우리는 돌아온 탕아가 되어 야곱의 축복을 목놓아 열창했다.


싸이 버거는 은혜 그 자체였다 출처 : 맘스터치



아마 군대를 다녀오시지 않은 분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먹을 것 때문에 저러는 게 말이 돼?'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을 왜 못 참지?'

'음식 때문에 매주 종교도 바꾸고, 너무 단순한 거 아냐?'

우리는 일상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몇 달간 닭가슴살과 고구마만 먹기도 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던 음식을 끊어내기도 하지 않는가? 회에서 잘 먹지도 않는 초코파이 하나, 햄버거 하나 때문에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불고기버거야 맥도널드에 가면 2,000원만 주면 먹을 수 있고 초코파이는 하나에 몇백 원 밖에 하지 않으며, 편의점마다 꽉꽉 들어차 있는 흔해빠진 과자가 아닌가!


먹는 것, 웃는 것, 말하는 것, 걷는 것, 자는 것까지 통제받는 상황 속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고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때론 그 순간이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훈련병은 원하는 음식을 사 먹을 돈도 없고, 부대 안에는 음식점은 고사하고 자판기도 한 대 없을뿐더러,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순간도 없다. 사회에선 사람들이 하루만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해도 열불을 내는데, 6주 동안 땡볕에서 구르고 뜀박질하는 군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겠는가. 6주간의 훈련소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욕심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종교활동뿐이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육군훈련소 교회 찬양 영상을 보았다. 머리를 빡빡 깎은 훈련병들이 신나게 율동을 하며 목이 터져라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나의 지난 군생활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많이 힘든 한주를 보냈겠구나.'


교회와 성당, 절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오와 열을 맞추고 줄을 맞춰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선 우리에겐 때론 저렇게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순간이 필요했다. 유튜브에서 훈련소 교회 영상을 검색하면 웃음 없이 보지 못할 영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 이런 영상을 접하는 분은 다소 '충격적이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사회에선 절대 보지 못할 남자들의 숨겨진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입대를, 아니 유튜브를 참고하세요 출처 : 유튜브 시애틀 tv



한주는 절에서 햄버거를 먹고, 다음 주엔 교회에서 콜라와 초코파이를 위해 세례를 받고, 다음 주엔 성당에서 피자빵을 먹는 것이 바로 훈련소 종교활동이었다. 사회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먹을 거에 환장한 사람 취급당하겠지만, 한창 혈기왕성하고 자유롭고 싶은 20대에게 종교활동이라는 소소한 자유와 재미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군생활을 버티겠는가!


전역을 하고 보니 가장 순수(?)하게 포교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훈련소가 아니었나 싶다. 채워지지 않는 삶의 욕구를 찾기 위해 찾아가는 예배당과 법당. 그리고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찰나의 자유,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평생을 함께할 믿음과 신앙의 시작점이 되는 곳.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청년들의 외롭고 힘든 순간에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종교활동 시간이었다. 훈련소에서 유일하게 조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예배당과 법당, 그곳은 단순히 햄버거와 콜라 같은 사회의 음식을 맛보는 곳이 아닌,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자유'라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 훈련소에서 종교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씨에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병들의 마음이 너무 춥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희생과 노고를 보상할 수 있는 좋은 대안들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군대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을 누군가의 형제자매, 아들과 딸,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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