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는 외식메뉴 중에선 비교적 고가의 메뉴로 여겨진다. 마트 회 코너, 동네 횟집, 고급 일식점까지 다양한 경로로 회를 즐길 수 있지만 회라는 음식이 일반 서민들에게 만만한 가격대의 외식메뉴는 아니다. 그런 회가 일개(?) 밥반찬으로 강등 아닌 강등을 당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부산의 회 백반집들이다. 오늘은 부산의 회 백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날로 먹는 것도 음식이라고 해요? 가장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음식인걸요!
날것을 먹는다는 것. 날음식은 아마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음식의 형태중 하나일 것이다.구석기인들은 자연에서 채집한 대부분의 음식을 날것으로 섭취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불에 그을린 곡식과 열매, 고기를 통해 농축된 단 맛, 지방이 주는 풍부한 맛을 맛보고 이 맛을 갈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인류는 불을 이용하여 재료들을 익혀먹기 시작했고, 화식(火食)은 인류가 에너지를 날음식에 비해 더욱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익힌 음식을 통해 뇌의 에너지원인 당과 신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고, 뇌와 자유로운 두 손을 적극 활용해 인간은 지구의 피라미드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익힌 음식은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섭취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인간의 중심으로 가져오게 한 촉매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힘이 세지도, 가장 빠르지도 않은 인간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익힌 음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는 오랜 시간 음식을 익혀먹어 왔지만 세계 곳곳에 음식을 날 것으로 먹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 생선회나 육회, 샐러드는 21C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많은 이들이 익히지 않은 날음식이 주는 특별한 맛과 식감을 느끼기 위해 날음식을 찾는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초밥집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독일인들은 생고기를 샌드위치에 끼워먹으며 한국인들은 살아있는 낙지를 참기름에 찍어먹는다. 하와이 인들은 생참치를 양념에 버무려먹고 에스키모인들은 날고기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음식을 익힘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이점이 있는 반면에 날음식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맛과 식감이 있으며, 날음식은 지리적, 환경적인 이유로 보충이 어려운 영양소를 인간에게 제공해주곤 했다.
회 백반
'백반'은 일반적으로 밥, 국, 반찬을 한 상에 차려내는 음식을 말한다. 전국 어디를 가나 불고기 백반이나 게장백반, 제육 백반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회 백반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다른 백반들처럼 밥과 국, 반찬이 나오고 메인 반찬으로 회가 나오면 바로 회 백반이다. 거기다 초장과 쌈장, 그리고 쌈채소가 곁들여지면 완벽한 회 백반 한상이 나온 것이다.
옛날에 회는 바닷가가 아니면 제대로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다. 기름기 많은 제철 생선은 상온에서 쉽게 썩고 부패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신선하고 값싼 회를 맛보기가 어려웠다. 회를 먹기 위해선 물고기를 신속하게 운송하고, 손님에게 대접하기 전까지 수조에서 살려야 하기 때문에 회를 맛보는 일은 큰 비용을 치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과 같은 해안도시는 지리적 특성상 싱싱한 횟감을 얻기가 쉬워 회 백반이라는 특별한 메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얻기 쉬운 재료들이 그 지역의 식탁을 차지하기 마련이니깐. 덕분에 나는 회는 원 없이 먹고 자랐다. 회의 빛깔만 봐도 어떤 생선이지 얼추 맞출 정도였고 내륙지역에서 온 친구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곤 했다.
회 백반의 메인은 바로 '회'
불고기 백반은 불고기가 맛있어야 하고 게장백반은 게장이 맛있어야 한다. 회 백반도 물론 회가 가장 맛있어야 한다. 회를 먹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바로 활어회와 숙성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회'는 주로 활어회이다. 갓 잡은 생선을 초장집이나 횟집에서 곧바로 먹는 것이 우리가 회를 섭취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회 백반의 경우에는 활어를 쓰는 경우도 있으나 숙성회를 내어놓는 집도 간혹 있다. 숙성을 거친 회는 활어에서 느끼지 못하는 숙성회만의 독특한 향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회 백반은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광어, 우럭, 돔, 가자미등의 흰살생선이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흰살생선은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 겨울이 제철이며 이 시기엔 더욱 기름지고 맛있는 회를 먹을 수 있다. 광어와 같은 몸이 납작한 생선의 경우 기름기가 지느러미 살(일본어로는 엔가 와라고 말하기도 한다)에 몰려있는데 부산사람들은 이 부분을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여긴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광어의 지느러미 살만 보더라도 어떤 계절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음식을 더욱 맛있게 하는 것은 바로 양념이다
회 백반의 단짝, 초장과 쌈장
부산은 회를 먹을 때 초장과 간장, 그리고 특이하게도 쌈장을 곁들여 먹는다. 경상도에서는 쌈장에 참기름, 마늘과 풋고추를 곁들여 쌈으로 먹는 문화가 있다. 마치 삼겹살을 쌈장과 함께 쌈을 싸 먹듯 부산에선 회를 쌈장에 찍어 쌈으로 먹는다. 기름진 삼겹살의 맛을 쌈장이 잡아주듯이 회의 기름 맛도 쌈장을 만나 더욱 풍미가 극대화된다. 부산엔 초장을 식당에서 직접 만드는 횟집들이 있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사장님만의 노하우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초장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회 백반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여태까지 회는 간장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부산 회 백반의 새로운 맛과 매력에 푹 빠질지도 모른다.
가장 부산스럽게 회를 먹는 방법 바로 쌈 싸 먹기
한국음식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쌈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토르티야에 재료를 넣어 타코를 만들고, 미국 사람들은 빵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핫도그를 만든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쌈야채에 고기와 생선을 넣어 쌈이라는 음식을 만든다. 회 백반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쌈장 또는 초장에 회를 푹 찍어 먹는 방법을 추천한다. 여기에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마늘과 풋고추까지 들어간다면 땅과 바다의 맛이 모두 담겨있는 쌈의 복합미가 완성된다. 쌈은 같이 밥을 먹는 소중한 이들의 손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자신만의 쌈 레시피를 공유하는 개성 있고 재미있는 식사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런 특별한 바식으로 맛을 즐기고 나눔으로써 우리는 애정과 관심을 전한다. 한국인의 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쌈문화가 아닐까 싶다.
많은 이들이 회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를 겨울로 꼽는다. 추운 겨울에 대비해 몸에 지방을 가득 채운 생선의 기름진 맛과 풍미는 많은 미식가들이 겨울을 기다리게 만든다. 올겨울에 회를 마음껏 즐기진 못했다면, 봄이 제철인 도다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계절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마 다채로운 제철음식이 아닐까? 도다리쑥국에서 피어나는 봄 향기에 마음이 설레는 따듯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