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동물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반가운 얼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양이와 개를 여행지에서 만나도 반갑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떤 감정 때문일까요?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이지만 우린 편안한 감정 하나 만으로 길 위의 동물들과 소리 없는 교감을 나누곤 합니다.
올레길을 함께 걸은 강아지 위 사진은 올레길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말없이 다가와 저를 놀라게 한 강아지의 사진입니다. 이런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는 저가 신기했던지, 한참 동안 쫄래쫄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동행에 이 친구를 사진으로, 추억으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저는 또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방금 사귄 새 친구와 이별했습니다. 목줄이 있고 마을을 벗어나지 않던 것을 보니 아마 마을에서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는 강아지였나 봅니다. 제가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사진에 세상의 모든 편안함이 담겨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 갈매기 무리,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집 한 채, 맑고 넓은 바다와 푸른 하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담아낸 것 같아서 저는 이 사진을 참 좋아합니다.
잠시 일본입니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뽕을 뽑기(?) 위해 친구와 저는 이른 아침 길을 나섰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찾아가는 길에 고양이 2마리를 만났습니다. 일찍 일어난 녀석과 여전히 꿈나라에서 헤매는 녀석. 고양이들도 아침형, 저녁형 고양이가 있나 봅니다. 재촉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양이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니 그제야 살짝 눈을 뜨더군요. 제가 꿀맛 같은 늦잠을 방해한 것은 아녔는지 모르겠네요. 늦은 저녁, 녀석들이 있었던 곳을 지나는데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괜히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만 따라와 이제 육포 없어
다시 올레길입니다. 사람보다 소와 말을 더 많이 만난 한 올레길에서 강아지 2마리를 만났습니다. 1살이나 됐을까요? 제 비상식량인 육포를 털어먹고 강아지들은 제 갈길을 떠났습니다. 처음에 올레길을 찾았을 때가 2012년도, 한창 올레 걷기 열풍이 불 때였습니다. 저때가 2017년쯤이었는데 이전과 달리 사람 한 명 마주치기가 힘들더군요. 외로웠던 여정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아서 즐거웠습니다. 아껴먹던 육포가 사라지긴 했지만요. 지금은 중년기에 접어든 건장한 성견이 되었겠네요. 강아지들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인지라 신이 났던 걸까요? 녀석들의 침으로 범벅이 된 손을 바닷물에 씻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니 집이니? 올레길은 해안선을 따라 나있기도 하고, 오름을 지나기도 하며, 동네 골목길을 지나기도 합니다.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일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걸까요? 제 집인 것 마냥 당당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보다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말린 생선을 보고, 아,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죠. 2묘 1조로 생선 서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활짝 열려있는 문은 아마 녀석들이 자유롭게 다니라고 열어 둔 집주인의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올레길에서 만난 진정한 쉐어하우스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여행을 하다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들과 교감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왜 사람대신 반려동물과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말에 지친 우리의 삶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동물들과 교감할 때 우리는 '말'이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따듯한 손길과 눈빛, 웃는 얼굴이면 그들과 소통할 수 있죠. 주머니에 넣어둔 간식 몇 가지면 그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특권(?)도 주어집니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말없이 생각하고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한마디 충고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따듯한 포옹 한 번이었음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과 생각들. 어쩌면 말보다 중요한 것이 이런 소리 없는 교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과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상처가 되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말만 하지 않았었더라도...'라는 생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듣고 이에 맞춰 불필요한 많은 대답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말이라는 유용한 도구의 이점뒤에 숨겨진 부작용을 파악하고,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고, 혼자 카페에서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하고, 길 위의 동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저는 아마 침묵이라는 자유가 필요했나 봅니다. 말하지 않고 듣지 않을 자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