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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노매드(nomad)

by RNJ
도심 속 노매드



텐트를 지퍼를 여니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밤새 끊이지 않던 노루의 울음소리 덕분에 잠을 설쳤지만, 바닥에 부드럽게 깔린 낙엽과 수풀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나무 사이에 튼튼하게 묶어 놓은 줄에 텐트와 침낭을 펼쳐놓고 기지개를 핀 뒤, 캠핑 의자에 앉아 생수로 목을 축였다. 일찍이 내린 이슬은 흙과 풀의 향미를 깨웠고 풋풋한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오래 사용하여 쿠션감을 찾아보기 힘든 납작한 침낭이 바람에 힘 없이 흔들렸다. 낯선 길과 산에서 나를 살려 준 침낭과의 동행은 고시원에서부터 이어졌다.


고시원에 처음 입주한 날. 캐리어 하나, 작은 손가방, 등에 맨 백팩이 내 짐의 전부였다. 방을 배정받고 간단한 안내 사항을 듣고 시설을 조금 둘러보았다. 작은 공용 주방과 시멘트 포대가 가득 쌓인 옥상. 중개인도 이삿짐센터도 없는 이사는 가방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끝났다. 손바닥 만한 방에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물티슈를 발가락 사이에 끼워 방을 대강 대강 문지르다 무언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에는 이불과 베개가 없었다.


옷을 가득 집어넣은 백팩에 머리를 베고 군대 야전 상의를 뒤집어쓴 채 덜덜 떨면서 첫날밤을 보냈다(알고 보니 보일러와 수도가 고장 난 방이었다.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 징조였을지도) 어차피 돌아갈 곳이 없었기에 별다른 대안을 생각하진 않았다. 앞으로 이런 삶을 꽤 오래 지속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침낭을 하나 사기로 결정했다. 떠돌이로 살아야 한다면 짐이라도 가벼워야지! 고시원에서는 이불을 개어놓을 자리도 아껴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추위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고, 얕은 생각과 섣부른 판단으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침낭은 여름에 더웠고 겨울에는 추웠다.



다행스럽게도 침낭 속에서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고시원 생활을 마다. 웃픈 얘기지만 침낭 생활이 제법 재미도 있었다. 이래저래 바쁘게 보낸 하루를 끝마치고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슬프지만 따듯한 물이 잘 안 나왔다) 침낭 속에 들어가면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엉뚱한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고시원이 워낙 습기가 많았던지라 이른 아침이면 항상 옥상에서 침낭을 말려야 했다. 빨랫줄에 매달린 참새들은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헐레벌떡 사라졌고 도심의 작은 가로수는 부지런한 새들의 지저귐으로 소란스러웠다. 인간이 깨어나지 않은 도심의 주인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자동차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오기 시작할 때, 나는 부지런히 걸어 도심 속 공원에 도착했다. 그날부터 가볍게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으나 몸 하나 편히 움직일 수 없는 침낭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따위의 자조적인 생각에 빠지기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나에게서 한동안, 이곳을 떠날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길 원했다. 이곳의 삶에 안주하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어디로든 떠나도 좋으니 멈춰 서지만 말라는 과거의 외침으로 느껴졌기에. 우연히 이곳에서 수년을 보낸 거주민의 방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방구석에 가득한 라면 박스와 옷장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걸린 옷가지가 보였다. 그 방은 창문이 없는 내창방이었고 사시사철 켜진 티브이가 세상으로 난 유일한 창문이었다. 고시원은 몸 한편 편하게 누일 곳이 없는 도시 유목민을 위한 여관방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었다. 약간의 허기가 느껴져야 정신이 명료해지고 몸이 불편해야 새로운 방도를 찾기 마련이듯, 나는 골방에 썩기 위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켜야 했다. 많은 이들이 고시원에서의 삶을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부른다. 무료로 제공되는 밥과 김치로는 달랠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자라는 장소. 이삿짐부터 이부자리까지 단 하나도 무거운 것이 없었던 빈약한 시작이 더욱 앙상한 결말로 시시하게 끝나길 바랐다. 고시원에서의 삶도 행복하고 풍족할 순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힘듦과 동시에 불필요한 일이었다. 고시원 거주민들은 자신의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간다. 한 뼘 남짓한 공간을 두 뼘, 세 뼘으로 늘리기 위해서. 살면서 '자가'라는 목표를 가져본 적 없는 나 또한 침낭 속에서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방이 조금만 넓어져도 기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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