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되다
해바라기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스케치북에 끄적
고시원 라이프에서 햇빛은 공공재가 아닙니다. 외창방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내창방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루어야 하죠.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외부에 있을 텐데 창문이 중요한가?'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화장실에 환기장치가 따로 없는 고시원이 많기에 햇빛이 들지 않으면 금세 곰팡이가 모락모락 자라나곤 합니다.
그리고 채광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환기입니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음식 냄새와 생활소음처럼 밖으로 휘 던져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지런히 쌓여가는 먼지도 그렇고요. 외창 방을 아파트로 비유하자면, 전망이 좋은 남향집, 또는 펜트 하우스(과장을 많이 보태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고시원 앞에 10층은 넘어 보이는 큰 건물이 있어 햇볕이 제 방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않습니다. 오전 9시에 11시 사이가 제가 유일하게 직사광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햇빛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의 경계를 보고 있자면, 꼭 절대자의 은총이 내 방안에 따듯하게 내려앉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조그마한 나의 골방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리가 바로 이곳입니다. 햇빛을 쬘 수 있는 시간대가 되면 저는 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햇빛을 쬐곤 합니다. 따스한 손길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곳. 사실 햇볕을 받기 위해선 집 밖으로 나가도 되지만,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맞이하는 햇빛은 의미가 조금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남향집을 좋아하나 봅니다.
저는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고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햇볕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창가에 앉아 노란 미소를 피어내죠. 고양이들이 왜 맨날 창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흘러가는 따듯한 햇살을 놓치기가 아쉬워 창문 앞에 꼭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내 방안에 고양이가 있었다면 아마 햇빛 잘 드는 자리를 두고 꽤나 다투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함께 나란히 누워 햇빛을 즐겼으려나요? 저 자리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비가 촉촉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홍차 한잔. 해바라기도 가끔 쉬는 날이 있어야겠죠.
해바라기는 따듯한 햇빛에 씨앗을 영글내던데, 나는 저 햇빛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무엇을 영글어내고 있을까요? 나의 수확철엔, 무엇이 영글어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감내하며,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있는지.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해바라기는 가을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