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항구 근처 숙소에서 하루 묵었던 적이 있다. 새벽 바다를 찍기 위해 일찌감치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해가 막 뜨기 직전 항구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들이 몇 군데 있었다.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가게불을 밝히고 구수한 밥향기를 풍기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갈치국"
메뉴판에 '갈치국'이라는 메뉴가 있었다. 회와 해산물이 풍부한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갈치국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횟집에서 매운탕과 맑은탕은 셀 수 없이 먹어봤지만 갈치가 들어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보통 회를 뜨고 남은 부위들로 매운탕이나 맑은탕을 끓이기에 갈치를 넣은 탕이나 국은 보기가 힘들다. 갈치는 회보다는 보통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 생선이기에 갈치가 들어간 탕이나 국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갈치탕을 주문하자 주인아주머니께서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처음이라는 말에 '씩' 웃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시던 사장님. 그 웃음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물씬 풍겨오는 고수의 향기에 '아 제대로 찾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맛을 사랑한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맛집'을 찾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나를 세상에 어디에 던져놔도 맛집부터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맛'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 맛이 '새로운' 맛이라면 음식을 기다리며 맛을 상상하는 그 시간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새하얀 자기 그릇에 담긴 갈치국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의 예상과 달리 맑은탕이었다. 갈치조림에 짝꿍인 빨간 양념의 맛과 색이 익숙했던지라 나는 갈치국도 빨간 양념이 들어간 매운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갈치라고 하는 생선이 주는 무엇인가 비릿할 것 같은 느낌? 비린내를 잡기 위해 자극적인 양념을 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맑은탕이 나왔다. 갈치 맑은탕. 상상하지 못한 비주얼의 음식이었다.
맑은 탕의 핵심은 생선의 신선도이다.
신선하지 않은 생선은 절대 맑은탕으로 끓일 수 없다. 생선 비린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횟집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회를 먹고 맑은탕이 나오는 집이다. 재료의 신선도와 맛에 자부심이 있는 집을 찾고 싶다면 맑은탕을 하는 식당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신선한 생선으로 맛있는 매운탕을 끓이는 집도 많습니다.)
냄새로 처음 음식을 맛보고, 첫 술을 떴다. 개운함. 처음 먹어본 갈치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개운함'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국 안에 단호박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아마 단호박이 생선의 비린맛을 잡고 감칠맛을 올리는 핵심 재료가 아니었을까. 국은 깔끔했다. 다만 갈치의 크기가 조금 작아 살을 발라먹기는 조금 힘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갈치국은 작은 갈치로 끓이는 것이 제맛이라고 한다. 그래야 깊은 생선의 맛이 국물에 우러나온다고 한다.
메인 음식인 갈치국과 다채로운 반찬, 그리고 사장님의 자신 있는 미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아침 식사였다.
갈치국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특별한 음식이었다.
내가 먹어보지 않은 음식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담겨있다. 낯선 재료들의 조합과 이를 완성하는 양념의 맛과 향. 특히 토속음식은 지역의 특색이 음식에 함께 담겨 나온다. 갈치국은 바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인 신선한 갈치와 땅에서는 호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제주도만의 토속음식이다. 거친 비늘이 없기에 별다른 손질 없이도 편리하게 국으로 끓여 함께 먹을 수 있는 시원한 갈치국. 땅에서 난 배추와 호박이 갈치국의 맛과 빛깔을 더해주는 감초역할을 제대로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