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생, 닫히지 않는 문

by RNJ


고독생, 닫히지 않는 문


볕이 들지 않는 고시원 복도


창문이 없는 고시원 복도에는 단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주황색 조명 하나가 24시간 복도를 밝히고 있어서 시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언제나 늦은 저녁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좋게 말해 운치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동굴 속에 사는 기분. 내가 사는 4층에는 항상 이 어두운 복도를 향해 문을 열어놓고 사는 아저씨가 있었다. 복도에는 먼지가 굴러다니고 주방 음식 냄새가 빠지지 않았는데, 문을 열어놓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방은 외부로 난 창이 없는 내창방이었다. 환기를 할 수 있는 창문이 없으니 볕과 바람이 하나도 들지 않는 복도를 향해 방문을 열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항상 열려있던 아저씨의 방문이 아주 굳게 닫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복도 내창을 통해서 새어 나오는 불빛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다음 날도 마찬가지었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에 점 하나만 새로 찍혀도 소란을 피우는 기민함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가! 마스크 때문에 얼굴도 잘 모르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이름 모를 아저씨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괜히 할 일도 없는데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거렸고 홀로 마음을 졸였다. 다음 날, 아저씨 방문은 반쯤 열려있었고 TV 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이전에 보건소 실습을 나갔을 때 쪽방촌을 찾아갔었다. 방문간호 담당자는 업무의 고충을 끝도 없이 늘어놓고 있었고 나는 건성건성 대답하며 시계만 흘겨보고 있었다. 관리 명단에 등록된 주민들은 하나같이 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있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미리 열어 놓은 걸까?'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냉장고가 없어서 상온에 방치된 음식냄새가 코를 찔렀다. 랩 위에서 파리가 춤을 추고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르신들은 누워서 TV나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혈압을 재고 혈당을 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제분은 가끔 찾아오세요?’

‘오지 말라고 해.’

‘왜요?’

‘짐 될까 봐.’


뒤죽박죽 섞인 약봉지를 종류별로 정리해서, 매직으로 어떤 약인지 크게 적어놓았다. 손을 흔드는 어르신을 두고, 다음 쪽방을 찾아갔다. 문은 처음처럼 살짝 열어놓고. 대가족은 이제 천연기념물보다 찾아보기 힘들고 핵가족마저 1인 가구로 분열하는 세상이다.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과 자발적인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고독사’ 문제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지만, ‘고독생’이라는 닻은 여전히 바다 깊숙이 박힌 채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는 생(生) 자들을 외면한 채, 죽은 자의 흔적만 뒤쫓으며 지나버린 과거에 스스로를 옭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 김승희 자유 한국당 의원실


4196건, 3159건. 2020년, 2021년 집계된 고독사 발생 건수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독거노인 문제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 연령층에서 고독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청년 실업, 코로나 팬데믹, 인플레이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적 소외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다. 사회 안전망의 느슨한 그물코 사이를 통과한 수척한 사람들은 차가운 바닥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추락하고 말았다.


영국은 외로움 담당 장관(체육, 시민 사회부 장관이 겸직)이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은 돌봄 관리 부서가 신설되어 고독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시행 중에 있다고 한다. 한국은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으나 여전히 실태조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개인주의와 세대 갈등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빈곤이라는 키워드에 단단히 묶여버린 다소 이질적인 다연령 집단이 태어났다. 태양을 향해 다가선 적도 없건만 햇빛도 들지 않는 세상의 힘없는 날개들을 지탱하던 밀랍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고독생은, 고독사라는 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자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주변 이웃들의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으로 존재하다 사라지며, 망자가 공개를 허락하지 않은 일기장과 이력서는 주인공이 사라진 이후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청소업자는 폐기물 봉투에 고인의 물건을 하나하나 담고 약품을 뿌린다. 청소가 끝난 방은 얼마 후 새로운 입주자를 맞이한다. 그렇게 그들은 깨끗하게 잊힌다. 아마 오늘도, 내일도, 아마 그다음 날에도....


고독생을 살고 있던 고시원, 쪽방촌 사람들. 닫히지 않는 방문 사이로,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영화 [아이리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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