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식당 이야기

여행자를 위한 빅데이터센터

by RNJ
기사식당 이야기


순두부 백반


제 키가 지금의 반만 했을 때, 저는 기사 식당이 '기사님'만 갈 수 있는 식당인 줄 알았습니다. 기사식당 창문에는 '기사님 우대', '기사님 환영'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곤 했죠. '우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던 어린 저는 '기사님만 받아도 장사가 되나...?'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실상을 알기 전까지 저에게 기사식당은 참 미스터리 한 공간이었죠.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순수한(=조금 멍청한) 생각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나만 그랬나?


중학교 때 친구들과 처음으로 기사식당을 갔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볼을 차다가 해가 산 너머로 어둑어둑 넘어갈 때쯤, 한 친구 녀석의 주도로 열 대여 명의 남정네들이 근처 기사 식당에 우르르 몰려갔죠. 평상 위 테이블 위에서 배가 터지도록 불고기 백반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장님은 저희들을 위해서 고봉밥에 고봉밥을 얹어서 저희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진수성찬


'낯선 곳에서 한 끼 맛있게 밥을 먹고 싶다면 오래된 기사 식당을 찾아가라.'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홀로 여행을 즐기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기사식당은 아주 사랑스러운 공간입니다. 주문을 하자마자 주방에서 한 쟁반 가득 음식을 들고 나오시는 아주머니들. 코리안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요. 쟁반에 가득 들어찬 반찬과 따듯한 국. 메뉴도 참 다양합니다. 불고기 백반, 제육볶음, 생선구이, 순두부 정식, 청국장, 보쌈 정식, 국밥...


해안도시에 위치한 기사식당에는 생선 구이가 빠지지 않고, 큰 산을 끼고 있는 기사식당에는 산나물이 빠지지 않습니다. 지역의 토속 젓갈을 맛볼 수 있고, 특산주를 한 잔 얻어먹을 수도 있죠. 향토 반찬으로 쟁반을 가득 채운 상을 받으면, 내가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수구레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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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 말고 이모님들에게 지역의 유명한 맛집을 물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 : 이모님, 이 근처에 유명한 맛집 없어요?

이모님 1 : 그 그, 요 00 사거리에 00집이라고 있거등? 그가 참 유명하다.

이모님 2 : 뭐라하노! 그 집은 마 옛날에나 무을만 했지. 그 말고 00가이소. 소식 늦데이~

이모님 3 : 하, 참. 젊은 총각 입맛에 그게 맞겠나? 센스도 읍제. 그 이 짝 옆동네에...

기사님 1 : 이 집이 제일 맛있는데, 이 집이 맛집 아닌교. 그 반찬 좀 더 주이소.

이모님 1 : 00집이 맛집이 아니면 어데가 맛집이고? 거기 000도 왔다 갔다 하더라.

이모님 2 : 하이고 고집도 세다. 맞다 맞다, 거가 맛집이다.

이모님 3 : 진짜가? 000도 왔다 갔다 하드나? 와, 우리 집은 안 들린다나?


질문자는 제쳐두고 박진감 넘치는 토론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여행자에게 기사식당은 데이터센터 같은 존재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그 지역을 여행하는데 필요한 알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유명한 관광지, 유명한 식당, 이동 수단, 이전부터 내려온던 재미난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수많은 손님들이 오간 자리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뜨뜻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들이켜고 계시는 기사님이 곧바로 출발 준비를 해주시는 곳이기도 하죠.


여행객들에게 오래된 기사식당은 현지 주민들이 구성한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빅 데이터 센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식사와 정보, 그리고 이동 수단까지. 또한 기사식당의 정보는 전혀 암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종종 지역 사투리로 인해 해독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만). 꼭꼭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유용한 정보를 마음껏 내어주는 곳이죠.


현지 주민들의 추천으로 즉흥적으로 시작하는 여행, 무(無) 계획 여행자라면 기사식당에서 인상 좋은 지역 홍보대사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저렴한 가격, 푸근한 인심 가득한 기사식당을 찾는 것. 이또한 국내여행이 주는 한 가지 묘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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