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따뚜이, 일석 N조 식단

대한민국 고시원에서 맛보는 프로방스 음식

by RNJ


라따뚜이, 일석 N조 식단


짜투리 야채들이 만나면...


고소한 올리브유, 새콤한 토마토소스와 담백한 치즈가 들어간 양식(洋食)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양식을 참 좋아하는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바로 가격입니다. 저 먼 이국 타지에서 물 건너온 음식이라 그런지 완제품을 사 먹기 위해선 꽤나 큰 지출을 감수해야 하죠. 그러나 모든 음식이 그렇듯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를 한다면, 저렴한 가격에 훌륭하고 풍미 가득한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를 구입하다 보면 꼭 애매하게 남는, 자투리 야채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버섯 하나, 애호박 3/4덩어리, 양파 반쪽, 감자 2개. 어떤 음식을 하건 이 재료만으로 요리를 만들기는 조금 힘겨워 보입니다. 이럴 때 냉장고를 깔끔이 정리할 수 있는 음식, 바로 라따뚜이가 있습니다.



라따뚜이를 생쥐가 나오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으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레스토랑에선 절대 마주하면 안 되는 생쥐가 특급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만드는, 그 발상이 참 재밌고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라따뚜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영화에도 라따뚜이가 나오며,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등장합니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음식이라고 합니다. 양파와 올리브유를 함께 볶다가 다양한 야채들을 넣어 볶아 먹거나, 오븐에 푹 익혀서 먹는 음식이라고 하네요. 고기를 넣을 수도 있지만, 라따뚜이는 본래 가난한 농부들이 남은 재료를 활용하여 먹었던 서민들의 음식이라고 합니다.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모두 넣어 만드는 이탈리아의 프리타타와 아주 유사한 발상의 음식인 것 같네요. 우리나라로 치면... 부대찌개나 야채 볶음밥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따뚜이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남은 야채를 모두 끌어모아 올리브유에 볶으면 됩니다. 올리브유에 잘게 썬 양파를 먼저 볶는 것이 정석이라 볼 수 있지만, 어떤 야채든 익혀서 토마토소스에 푹 익혀 먹으면 제법 괜찮은 향과 맛이 납니다. 저는 남은 애호박과 버섯, 그리고 토마토소스(없으면 케첩)와 물에 불린 마카로니를 곁들여 저만의 라따뚜이를 완성했습니다. 자칫 버려질 뻔한, 냉장고 구석에서 제 맛과 향을 잃어가던 재료들이 풍미 가득한 음식으로 재탄생했네요.


필요한 재료 : 자투리 야채(양파, 단호박, 버섯, 가지 등...), 올리브유, 토마토소스.

추가하면 좋은 재료 : 물에 불린 마카로니와 파스타. 고기.


고시원 라따뚜이


남는 재료를 활용한 음식, 라따뚜이
낭비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라따뚜이형 사회


만약 남는 채소가 없다면, 마트의 알뜰 할인코너를 활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30%가량 할인된 가격에 유통기한 임박한, 표면에 상처가 있는 야채들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가격 면에서 꽤나 부담스러운 품목입니다. 고시원엔 이 야채들을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가 않죠.


손질과 보관 문제로 인해 대부분의 고시원 사람들이 HMR(가정 간편식, home meal replacement)이나 컵라면, 패스트푸드를 주식으로 삼습니다. 식비가 여유롭지 않으니 저렴한 비용으로 고칼로리를 내는 음식을 찾게 되고, 과일과 야채는 항상 장바구니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맙니다. 고칼로리, 고지방, 설탕 함유량이 많은 식품일수록 다양한 성인병과 만성질환을 일으키며 노후에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위기의 레스토랑]에서는 다소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신선하고 맛 좋은 야채와 채소를 공급하는 업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프로그램의 셰프는 질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신선하고 값싼 못난이 채소들을 활용하여 위기에 빠진 레스토랑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아까원 자원들을 적절히 공급하고, 이를 수용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뀐다면 우리의 식탁은 보다 다채롭고 건강하게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하여 불필요한 낭비와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고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레스토랑>


국내에서도 다양한 업체들이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저렴한 야채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농가의 추가 수입을 보장하고, 고객들에게 저렴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제공하며, 불필요한 환경오염과 자원낭비를 막을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못난이 채소를 판매하는 전용 매대를 만들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공하기에 부적절해서, 모양이 이쁘지가 않아서, 크기가 너무 커서.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한 못난이 농산물이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인해 고민이 많을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새롭고 참신한 대안책이 되었습니다. 지역의 농부들과 고객들이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쓴다면 불필요한 유통과정을 줄이고 더욱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주말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도심 공원에 마켓을 열 수 있다면 온 가족이 집에 모인 주말,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겠죠. 지역화폐 활성화와 지역 주민 간의 화합과 소통에도 기여할 수 있겠네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아끼며 사용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사람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고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유통&소비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저처럼 식비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녁 6시. 라따뚜이를 조리하며 만난 대부분의 고시원 사람들 손에는 냉동식품과 패스트푸드가 들려 있었습니다. 주방에서의 해방이, 건강한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묘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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