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돼지국밥이 생각나는 계절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고향은 새로운 여행지가 됩니다. 저에게는 부산이 그런 도시입니다. 한동안은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기약없는 행선지, 바로 부산.
커다란 솥에서 피어오른 김으로 가게 유리창이 하얗게 데워지고, 이모님들의 터프한 사투리와 부산 토박이들이 큰 목소리로(절대 싸우는 게 아닙니다) 주고받는 살가운(?) 대화. 부산이 그리워질 땐 돼지국밥이 생각나고, 돼지국밥이 생각나면 부산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따듯한 국밥을 함께 먹는 것. 타향살이를 하는 저에게는 이런 소소한 풍경과 소중한 만남이 너무나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부산에 가면
당연히 돼지국밥을 먹어봐야지!
부산 사림이라면 '이 집이 부산에서 최고다!'라고 목에 힘을 주고 자랑하는 돼지국밥집이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이 말에 숨겨진 의미는 '이 가게가 우리 집에서 멀지 않고, 자주 다니다 보니 이 맛이 디폴트(=기본값)가 되어 버렸고, 사실 다른 집 돼지국밥 맛은 기억도 잘 안나며, 아무튼 이 집이 최고야!'가 아닐까 싶네요.
투박하고 정이 넘치는 부산 사투리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단골집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신뢰도는 조금 떨어지는) 재미있는 표현이죠. 그래서 부산 지인에게 추천받은 국밥집에 기대를 가득 품고 간다면, 평범하고 무난한 맛에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돼지국밥이 최고다!'라고 말은 부산에서 돼지국밥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의미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음식을 너와 나누고 싶다.'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얼마 전,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친구로부터 '돼지국밥 먹으러 안 오냐?'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정 표현 능력치가 0에 수렴하는 부산 사람들은 '보고 싶은데 안 내려오냐? 별일 없냐?'말은 이처럼 에둘러서 표현하곤 합니다. 저도 답을 합니다. '너는 모르겠고, 국밥은 생각나네'
나의 고향, 부산으로 떠날 몹시도 익숙할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