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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Jul 01. 2022

망자를 품으며 살아가는

제주의 묘와 산담, 이해와 균형

망자를 품으며 살아가는



 처음 제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푸른 바다도, 한라산의 절경도 아닌 바로 제주의 '무덤'이었습니다. 마을 길을 걷거나 오름을 오르다 보면, 밭과 등산로 주변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묘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자주 마주치다 보니 지금은 별 느낌이 없네요. 이젠 오히려 무덤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입니다(요즘 올레길을 걷는 사람이 없어서 길이 참 적막하거든요). 낮은 돌담에 폭 쌓여있는 야트막한 동산. 옛 제주 사람들이 무덤과 돌담을 '산', '산담'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대강 짐작이 갑니다.


 삼다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이 많기로 소문난 제주도는 집은 물론이고 무덤마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라고 해요. 조상님이 제주의 거친 바람에 춥지 않으시라고, 방목하는 동물들에게 무덤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쳐놓은 친환경 바리케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가끔은 돌담을 넘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호기로운 소와 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옛날에 밭을 태울 때 무덤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제주에는 늦은 밤 시간에 산에서 길을 잃었다면 산담 속에 들어가라는 미신이 있다고 해요. 산담 아래에 누우면 무덤 주인(?)이 찾아온 객이 춥지 말라고 따듯하게 감싸준다는 온기 넘치고(조금 소름이 돋기도 하는) 재미있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당근 밭, 비트 밭 사이로 볼록 튀어나온 무덤.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어르신과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이들이 정겹게 겹쳐지는 묘한 풍경입니다. 담은 무엇을 둘러싸던 새로운 경계를 만듭니다. 이곳 제주에선 삶과 죽음의 공간이 일상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 있죠. 매일 볼 수 있으나 서로의 영역으로 넘어서지 않는, 생자와 망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벽이랄까요? 산담에는 올레라고 부르는 문이 존재한다고 해요. 망자는 이 좁은 바람구멍을 통해 소리 없이 후손들을 만나러 온다고 합니다.


 이해와 균형

 얼마 전, 시골 마을 근처에 자리 잡은 해안가 카페를 찾았습니다. 사람이 꽉 들어찬 1층과는 달리, 전망이 상당히 좋을 것 같은 2층 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군요? 바로 묘세권, 2층 테라스 아래에 무덤 봉분들이 속속 솟아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제주도 카페까지 와서 무덤 뷰를 보길 원하는 사람 없겠죠). 렌트카로 가득찬 주차장, 야트막한 집들 사이로 솟아있는 카페 건물. 그리고 이를 올려다보는 무덤 봉분. 저에게는 참 새롭고, 어떤 면에서는 신기한 풍경으로 여겨졌습니다.


 몰려드는 여행객과 새로이 조성되는 관광지는 제주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도 많았지만, 지역 갈등과 환경 오염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논란에 휩싸인 제2 공항, 관광업 종사자와 관광객 축소를 요구하는 정당,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과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들, 군부대 유치와 지난 기억을 놓아 보내지 못한 지역 주민들까지.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제주의 풍경처럼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삶과 죽음, 소음 없이 조화를 이루어가던 제주 무덤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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