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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기억의 대물림

by RNJ


"수학여행은 그냥 산이었죠 뭐.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오래된 흑백사진 속 교복과 교련복. 그다지 많은 색깔이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를 산 사람들은 수학여행을 '산'이라고 기억합니다. 정상 표지석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그리고 촘촘히 규칙적으로 파종된 빡빡머리와 단발머리. 파헤쳐진 산림에 조성되던 초기 인공림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습니다. 인공림은 빽빽해졌으며 우리는 보다 풍성한 색감을 가진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학여행은 명산, 야유회는 뒷산, 상사와는 주(酒)산. 지난 추억을 관통하는 산에 이제는 치가 떨려서인지, 수학여행 담당 선생님은 웬만해선 산을 일정에 넣지 않습니다. 게다가 누구든 다치면 큰일이고, 아이들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 물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판악이나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족히 8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안전 지도사는 사춘기 아이 수백 명을 데리고 왕복 30분짜리 오름 하나 인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라산이 코스에 있다면...


학생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면... 한라산 일정은 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합니다. 제주 수학여행은 아무리 길어야 3~4일. 학교에서 공항, 공항에서 다시 학교로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제주 여행 = 한라산'이 되어버리는 참극이 발생하기도 하죠(여기에 비라도 내리면...). 제주도가 볼거리가 없는 섬도 아니니, 하루를 통째로 '등산'으로 잡은, 수학여행을 담당한 선생님은 센스, 트렌디(?) 부족을 지적받지 않을 수 없겠죠.


가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코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해안도로 달리기, 역사 문화 탐방, 서핑체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곳 중에 하나가 학교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사회로 변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옵션 속에서 '한라산 등산'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움을 느낍니다. "도대체 왜?" 제가 묻습니다. "언제 다시 오겠어요. 제주도 왔을 때 가봐야죠." 학생이 답합니다. 자발적으로 고행을 선택하는 이들의 표정과 말투는 무언가 다릅니다. 요즘 아이 답지 않은 열정 반, 그리고 광기 반.


한때 눈이 내린 한라산의 매력에 푹 빠져, 매주 산에 올랐던 때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에 첫 차를 타고 산을 오르다 보면 지난주와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내가 왜 또 이 고생을 하고 있지?' 하나의 숨결, 하나의 걸음마다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힘듦이 중요하지 않은, 제가 다시 느끼고자 했던 환희(산소교환이 부족해서 뇌가 기분이 좋다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의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불평등해 보이는 교환의 미학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힘들 줄 알고 찾아온 길이며, 후회를 씹어 삼키며 걸을 때 느껴지는 그 씁쓸함이 어느 순간 달콤함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완숙함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헤어밴드를 한 장발의 남자. 다소 독특할 저의 몰골 덕분에 산을 오르며 사람을 사귀는 경험을 종종 할 수 있었습니다.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아저씨,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싶었다는 아주머니, 꽁꽁 얼은 길을 앞에 두고 아이젠이 없어 쩔쩔매던 학생들까지. 함께 정상을 오르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우리는 정상에서 헤어집니다. 내려가는 길이 즐겁습니다. 함께 짊어진 고행의 시간은 잠시 바닥에 던져놓고, 이제는 여유를 즐길 시간입니다. 지평 너머에 푹신하게 깔린 구름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스쳐가는 등산객의 표정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발견합니다.


내 의지로 선택하고 걷고 오를 수 있는 세상. 어떤 전통이 대물림되지 못할 때 빛을 발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효율성을 평가하는 주체가 분산되는 시대 속에서는 누구나 즐겁게 한라산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그 답답했던 풍경은 시간을 만나 새로운 계절로 변했습니다. 소소한 변화를 바라보는 20대 후반의 낙관주의자. 새로운 풍경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저는 산에서 배웠습니다. 한라산을 선택한 10대 후반의 아이들은 자연 속에 새겨진 이전의 발자국을 따라 오릅니다. '자발적' 회귀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자 본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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