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희미한 조명에 의지하며 동굴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물방울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고, 축축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옵니다. 허리를 숙이고 '머리 조심' 표지판을 지나칩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자연의 소리는 깊어집니다.
10월의 제주도. 무더운 더위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위에 지친 학생들은 편의점 냉동고로 달려갑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옵니다. 마스크는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완전히 젖어버렸습니다. 다음 일정이 동굴이라는 말에 학생들이 환호합니다. 과학 선생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아이들이 좋든 싫든 제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겠네요"
버스 정류장에서도 빵빵한 wifi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이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굴 속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암석과 지형 이야기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과학 선생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장소를 제대로 찾아온 셈입니다. '신호 없음' chatGPT로 숙제를 하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깜깜한 동굴 속에서 손발이 철저히 묶인 채 선생님의 지성에 의존해야 합니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은 목이 꺾이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빛과 걸음이 드물게 찾아오던 동굴은 이제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문화 예술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이 무용해지는 지하세계는 형형색색의 조명 시스템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동굴 속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군이 있었죠. 일부 동굴은 과도한 조명과 개발로 이전과는 많이 다른 속살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낯선 이끼가 동굴 벽을 따라 빼곡히 자라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동굴 곳곳에서 보입니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제주도 곳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과의 공존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인지, 선을 지우고 조금씩 섞여야 한다는 의미인지. 자연의 경이를 만나보지 못한다면 지구를 온전히 사랑하기 힘들 것이고, 너무 잦은 발길은 욕심과 무질서를 실어 나릅니다. 제주도 해안가에 위치한 경치가 끝내주는 무료 캠핑장은 과도한 쓰레기 투기와 알 박기 장박 텐트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문오름이나 한라산처럼, 보존 의지가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은 최소한의 간섭 아래 제한적인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적 특혜를 받지 못한 장소는 반 자연, 반 인공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끔 지역 미술관을 찾아 제주의 풍경을 사랑했던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합니다.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표정들. 화가는 멀찍이 떨어져 자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인간도 하나의 평등한 파사체였습니다. 인간은 동굴을 비와 더위를 피할 쉼터로 삼아 왔습니다. 때론 몸을 숨기고 환란을 피할 공간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더위가 사라지고, 증오의 냄새가 사라질 때.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짧은 동거가 싱겁게, 쿨하게 끝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동굴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의 메아리. 빈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주인들. 21세기는 이전 시대와는 달리, 진화를 결정하는 존재가 자연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