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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Feb 06. 2024

일하는 밤

 손주 자랑에 여념이 없는 오래된 아빠들은 손이 거칠다. 살결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뼈마디는 이리저리 뒤틀려있다. 시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바꿔 놓지만 무엇 하나 되돌려놓지 않은 채 멀리 떠나버린다. 아이의 부드러운 손톱을 어루만질 때 나의 손톱에 거친 줄무늬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어릴 때 힘껏 잡았던 아빠의 거친 손톱과 닮아있었다.


 집 근처의 꽃집에서 새로 들일 화초를 구경하다가 꽃집 아저씨에게 육아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었다(꽃을 팔 생각은 그다지 없어 보이셨다). 매일 고기를 사서 손주 집으로 퇴근한다는 아저씨의 약지는 한 마디 정도가 잘려 있었다. 아빠들은 가을 나무처럼 무언가 자꾸 잃어버린다. 겨울을 버틴 고목에서 무모하고 억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는 본 대로 자라고, 곧장 그들을 따라간다.


 몇 달 뒤, 사거리 한편을 차지하던 꽃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지붕이 사라진 땅에는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세한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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