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검진을 위해 들리던 산부인과 근처에는 제주살이 초기부터 들리던 작은 카페가 있다. 검진이 끝나면 카페에 들르는 일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었다. 카페에는 과일 이름을 가진 하얗고 큰 개가 살고 있었는데 선택적 거리 두기를 즐기는 매력적인 친구였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무릎에 누워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었고, 센티한 날에는 손님들의 애타는 시선과 손짓을 뒤로한 채 가게 밖 풍경을 도도한 선비처럼 관조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긴 카페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개는 꼬리를 흔들었고 사장님은 평소처럼 주문을 받았다. 0살 아기와 개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고, 개가 엉덩이를 슬쩍 내밀기에 자리를 뜰 때까지 부지런히 쓰다듬어주었다. 항상 말없이 불쑥 서비스를 챙겨주던 사장님은 갈색 쇼핑백에 감귤국의 화폐인 귤과 커피를 담아 '출산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선물을 건넸다. 우리는 카페에 구석에 새롭게 생긴 작은 식물 스튜디오에서 선인장 하나와 당근을 닮은 화초를 하나 구매했다.
사장님은 양손이 무거운 우리를 위해 가게의 문을 열어주었고, 큰 개는 떠나는 이의 다리에 살짝 몸을 비볐다. 한동안 발검음이 멈췄던 향수가 깃든 공간, 카페를 떠나던 늦은 오후에 따듯한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