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수산리에는 제주도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큰 저수지가 있다. 몇 년 전에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저수지에서 침을 줄줄 흘리던 들개 한 마리를 만났었다. 족히 20~30kg은 나갈법한 녀석은 겁먹은 여행자의 주변을 빙빙 맴돌았고, 나는 짱돌을 하나 손에 쥔 채 녀석을 주시하며 마을로 달아났다. 지나가던 마을버스 행선지를 보지도 않고 후다닥 올라탔던 웃픈 추억이 남은 곳, 이번에는 서로를 지켜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왔다.
검은 소나무라 불리는 곰솔은 보통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염분기로 인해 다른 생물이 버텨낼 재간이 없을 때, 소금기에 강한 곰솔만이 홀로 살아남는다. 저수지 한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거대한 곰솔 한 그루가 서있다. 너무나 커져버린 나무는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이곳저곳에 버팀목이 대어져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까이 가보려 했지만 풀벌레가 너무 많아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곰솔 건너편에도 우람한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다. 제주도를 떠나지 않는 개발의 바람은 바다와 숲을 가리지 않으며 풍경을 뒤흔들었고, 곰솔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 덕분에 거센 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이곳의 곰솔은 생명력이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민물로 가득한 풍요로운 땅에서 거대한 고목은 조금씩 저수지로 기울어지고, 아니 가라앉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저수지는 평화롭지 않았다. 안쓰러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