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나를 동시에 부르고 있었다. 분명 나의 자기는 언제나 한 명이었는데 말이다.
자기야!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다만 어린 아기들은 주로 엄마의 말을 따라 하는데 여기엔 따로 교육하지 않은 엄마의 일상 언어도 포함이 된다. 스펀지 같은 어린아이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번 잘못(?) 입력된 언어를 수정하기 위해서 별 난리를 다 쳐보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대체로 강력한 역효과, 반발심리를 만들어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본성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타고나는 너, 나, 우리 모두의 본성이랄까. 이러한 동질성 덕에 부모는 자식에게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더욱 끈끈한 애착 또는 근심이 자란다.
엄마와 아이가 즐겨 사용하는 '자기(自己)'라는 말은 예전에는 '그 사람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한정 지어 사용했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 자기 고집, 자기 의견.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기'에 친구 또는 손아랫사람이나 짐승을 부를 때 사용하는 조사 '야'가 붙어 기막힌 조합의 애칭이 만들어진 것이다. 친구, 손아랫사람, 짐승. 친분과 서열, 그리고 혐오의 의미가 모두 담길 수 있는 '자기야'는 그야말로 애인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만능 단어인 셈이다. 그래선지 아내가 쓰는 '자기야'의 어투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곤 한다.
ex) "자기야↑~" "자기야→!" "자기야↓." (어떤 상황일까?)
그런데 아이가 사용하는 '자기야'는 이상하리만치 '그 사람 자신'이라는 의미로 느껴질 때가 많다. 부자가 붕어빵처럼 똑 닮았기도 하고, 아이가 아빠가 하는 행동을 죄다 모방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맹인 아이가 아빠를 따라 글밥 많은 책을 읽고, 아침에 커피를 내리려고 하는가 하면 305cm짜리 골대에 농구공을 넣으려고 한다. 이는 아들과 아버지의 애착관계가 놀이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인데 왕성한 근육발달과 지적 수준의 향상을 이룬 아이는 아빠를 쫓아다니며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한다. 여전히 아빠를 "자기야!"라고 부르긴 하다만 말이다.
메타몽이라는 포켓몬은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로도 변신할 수 있으나 상대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기라도 하면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어설프게 아빠를 따라 하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노력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차마 비웃을 수가 없었다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아이도 '변신'이 풀려버리고 만다. 멋쩍은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짧은 순간에, 우리의 유년시절이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오랜 시간, 변신할 대상을 잃어버린 아빠 메타몽에게도 친구 메타몽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