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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를 아세요..?

잔잔히, 분위기가 고요하고 편안하게

by 유진 jjinravel Mar 10. 2025

벌써 재작년 즈음이네요.

이름만 얼핏 들어봤던 묵호로 떠났던 게.


잔잔한 바다. 제가 원했던 건 그거 하나였어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그저 누군가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방인이 되는 것. 동해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에 KTX 지도를 유심히 보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은 '묵호'였죠. 그리고 확신했어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일 거라고.


브런치 글 이미지 1

묵호로 향하는 기차에서 본 바다. 기차 너머로 보는 바다는 왜 항상 더 낭만적일까요. 기차가 선로를 따라 흔들거릴 때마다 바다도 함께 일렁이는 듯했습니다. 정동진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왔을 때도 봤던 풍경이었는데, 좀 더 길게 볼 수 있어 더 좋았죠. 묵호로 향하신다면 꼭 좌석 A열을 예매하는 걸로.


어떻게 보면 뚜벅이 여행은 퍽 효율적인 것 같기도 해요. 평소엔 앉아만 있던 스스로를 걷게 하고, 걷는 걸 넘어서 산책하게 하고, 기차와 버스의 낭만을 알게 하고, 성취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동안 ‘효율적’이라는 말에 시간과 돈을 먼저 떠올렸는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이 있을까요. 가끔은 돌아가는 길도 괜찮아요.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이동 시간 속에서 창밖 풍경도 바라보고, 우연히 마주친 골목에 이끌려도 보고, 바다 앞에서 시간을 내어주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니까요.




묵호

브런치 글 이미지 2

머물렀던 숙소 앞에서 찍었던 풍경입니다. 한참을 이 자리에 서있었어요. 부서지는 파도와 뽀얗게 올라오는 거품, 어렴풋이 보이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길. '내가 지금 영화 한 편을 찍는다면 딱 저기서 찍고 싶다.' 하는 생각이 차올랐죠.



브런치 글 이미지 3

"묵호 여행에서 뭐 하셨나요..?"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하려고 해요.

"바다 봤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묵호에서의 시간들을 곰곰이 떠올려 보아도, 가장 선명한 기억은 바다를 바라보던 순간들이더라고요. 어떤 여행은 수많은 장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쌓기도 하죠. 그런데 묵호에서의 제 여행은 조금 달랐어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제 시선은 결국 바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뭐가 그리 좋았을까요. 파도가 밀려왔다가 돌아가고, 그 끝에서 다시 흰 포말을 만들며 부서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어요. 그 단순한 반복이 어쩐지 제 마음을 안온하게 만들었고요.


브런치 글 이미지 4

또 다른 시간엔 조금은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노을을 봤습니다. 그 무렵, 바다는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그 위엔 갈매기들만 유유히 날아갈 뿐이었죠.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봤어요.



브런치 글 이미지 5

아, 물론 바다가 아닌 곳도 가주긴 했습니다. 올라가면 바다가 한눈에 보이니 바다를 더 잘 보기 위해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요. 고양이도 골목길도 많은 이곳은 잔잔하게 바다를 둘러보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벽화의 말 따라 이길 저길 구별 말고 앞만 보고 걸어가 주었죠.



브런치 글 이미지 6

묵호에서 돌아온 뒤, 떠오르는 건 결국 바다였어요. 뭘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보다, 바다를 보고 있던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러니 누군가가 다시 묻는다면, 저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하겠죠.


"바다 봤어요."


잔잔한 바다 앞에서 잠시나마 혼자가 되어보고 싶다면,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고 싶어 진다면, 뻥 뚫리는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면 슬며시 묵호라는 여행지를 추천드려 볼게요. 혼자 여행의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하고도 넘치는 여행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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