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또 다른 여정들
활성엽산, 비타민 D, 유산균, 코엔자임 Q10, 유비퀴놀, 이노시톨, 오메가3, 아연, 아르기닌, 라스베라트롤, NMN, 마그네슘, 멜라토닌, 닥터퍼틸리티, DHEA, 질 유산균, 비오틴, 오버부스트…
지금 나열한 것들은 모두 난임 여성들이 흔히 접하는 영양제들이다. 물론 한꺼번에 다 먹은 건 아니지만, 5년간의 시술을 겪은 나는 대부분 경험해봤다.
특히 45세 이전까지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약통 케이스에 챙겨 먹었다. 남편 역시 함께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로는 엽산, 비타민 D, 오메가, 항산화제 정도만 남게 되었다.
영양제값만 매달 상당한 지출이었다. 영양제는 어디까지나 보조제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포도즙, 염소즙, 한약, 대추 다린 물, 홍삼진액… 간 수치가 정상이었던 게 신기할 정도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만든 집착이었다.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그저 무엇이든 해 보자는 심정으로 달려갔다.
난임 카페에는 ‘삼신할매상’이라는 것도 있다.
음력 6일 저녁이면 흰쌀과 미역을 작게 잘라 부부 침대방 창가에 두고,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기도한 뒤, 그 다음날 그 재료로 밥을 지어 먹는다.
3개월간 반복하는 이 의식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다는 글도 올라오곤 한다. 나도 해봤다. 어딘가 믿고 기댈 곳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종교의 힘은 더더욱 크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멘탈 관리도 잘 되고, 긍정적으로 이 시기를 이겨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미혼 시절 불교를 접했고, 시술을 앞두고는 사찰을 찾았다. 이식 전날이나 채취 전날 절에 들러 기도하고 소원 등을 달았다. 효과를 떠나 마음을 다잡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되었다.
어떤 의사는 108배를 권하기도 했다.
힘들면 100배만이라도 하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좋다고 했다. 명상 앱을 추천하는 의사도 있다.
그만큼 난임은 ‘심리 관리’가 중요한 여정이다.
나의 시술 기간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팬데믹과 겹쳤다. 외부 활동이 어려워 유튜브로 요가나 명상을 했고, 이식 후엔 좋은 글을 필사하거나,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컬러링북과 보석십자수로 시간을 보냈다.
연두부, 땅콩, 블루베리, 우유를 갈아 만든 '한큐 주스'도 매일 마셨고, 족욕과 배 워머 착용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만보 걷기는 기본이었고, 항산화 영양제 수액을 맞는 날도 있었다.
시험관 하면 흔히 주사를 떠올리지만, 약도 많다. 갑상선 관련 약, 자궁 내막을 위한 약, 질정, 면역 수액… 이식 전에는 아스피린이나 맥시그라(비아그라 계열 약)를 복용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적도 있다. 혈류 순환을 위해서라고 한다.
NK 세포 수치가 높으면 면역글로불린 수액을 투여하기도 하는데, 나는 마지막 차수에서는 수급 부족으로 맞지 못했지만 오히려 착상에 성공했다.
그때 깨달았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40대 여성에게 가장 고민이 되는 것 중 하나, 바로 PGT(착상 전 유전자 검사)다.
나이 들수록 염색체 이상 난자의 비율은 증가하고, 이는 착상 실패나 유산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두 번째 임신 유산 후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두 개의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대부분의 고령 유산이 염색체 이상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수없이 고민한 끝에 이 검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나는 난소기능저하로 난자를 한두 개밖에 채취하지 못했고, 이 검사를 하려면 5일 이상 외부 배양이 필요한데, 내 난자는 그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3일 배양 후 이식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령 여성은 결국 염색체 정상이 포함된 난자가 배란되는 그 ‘확률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임이라고 본다. 난자 수가 많다면 PGT는 착상 실패나 유산의 아픔을 줄여주니 고려해볼만 하다. 하지만 나처럼 난자 수가 적다면 시도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시험관 여정은 단순한 병원 진료가 전부는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 길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을 때 조금은 덜 외롭다.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건네는 그 순간, 우리는 이 길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난임의 세계는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