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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서야 결혼과 출산이 내게 온 이유 2

연애를 늘 무겁게, 결혼으로만 생각했던 나

by 찐스마일

기차를 타고 병원을 오가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창밖 풍경이 뒤로 흘러가는 만큼 마음속 지난날들도 쉼 없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왜 남들이 경험하지 않고도 지나칠 수 있는 이 험난한 병원 생활을 이렇게 길게 겪고 있을까?’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하고 살아서, 신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마치 나의 선택과 과거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현실로 이어졌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난임을 겪게 된 건 늦은 결혼 때문이다.
결혼적령기에 자연스럽게 결혼했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병원 대기실에서 같은 처지의 ‘난임 동지’들과 이런 이야기를 종종 나누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나는 연애 때 왜 그렇게 피임에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임신도 잘 안 되는 나이인데.”

“결혼하고도 한동안 딩크로 지낸 거, 후회돼.
그땐 내 마음이 변할 거라 생각도 못했거든.”


40대가 대부분이다 보니, 나처럼 늦은 결혼을 한 이들이 많았다. 20~30대엔 일이나 취미, 공부 등 각자의 세계에 빠져 살다가 결혼의 시기를 놓친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그때 조금만 다르게 선택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수없이 했다.


나는 남자를 만날 기회가 적었던 사람이 아니다. 공대생으로 대학을 다녔고, 10년 넘게 컴퓨터 강사로 일하며 직장에서도 남자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동호회 활동이며 운동까지… ‘집순이라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변명은 내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복이 많은 편이라 사람도 잘 붙고, 호감을 표현해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연애를 너무 ‘결혼’과 연결해서만 생각했다. 즐기고 행복하면 그만일 연애를 늘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였다.


결혼까지 생각할 수 없다 싶으면 냉정하게 정리했고, 작은 단점 하나에도 마음의 문을 닫았다. 상대를 알아가기보다 평가하고 재단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어리다(幼)라는 말의 어원이 ‘어리석다’에서 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젊을때는 몸은 건강하나 지혜가 없고, 나이가 들면 삶의 경험으로 지혜는 생기나 체력이나 건강이 없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다 가질수는 없으니 말이다.


미혼시절, 소개팅에 나갔을 때 한 남자가 물었다. 어떤 남자를 찾느냐구? 나는 '나랑 잘 맞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나랑 잘 맞는 사람이라...상대가 내게 맞추어 주고 있었던거 아닐까요?'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그 말을 다시 생각해봤다. 누군가 나와 잘 맞다고 느낀다면 상대가 나를 위해 자기를 내려놓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가끔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당신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지금 당신한테 하는 거 반만 예전 남자들에게 했어도 벌써 여러 번 결혼했을걸?나 철들게 만든다고 그 사람들은 고생만 하고, 결혼은 당신이 했네~”


예전의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이들에게 까탈스러웠다.
마치 내가 ‘갑’이라도 된 듯 무심했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헤어지고 나서야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할 만큼 사랑을 주고 최선을 다한 연애는, 끝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교 용어 중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그 때가 되어야 인연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 역시 한때의 인연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지나면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마흔이 넘어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나는 사람을 더 소중히 대하게 되었다.


젊은 날, 나에게 호감을 주었던 그 남자들에게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알면서도 모른척 냉정했던 내가 문득 미안해진다. 한 번쯤 알아가려는 노력하거나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그때의 나는 누군가와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며 일상을 나눌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감당해야 할 감정들을 혼자 충분히 버텨내보기도 했고, 하고싶은 일도 왠만큼 해 봤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가족에게 쓰는 에너지나 시간이 희생이라고만 여겨지진 않는다. 또한 인연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직업적 성취, 해외여행, 취미와 쇼핑…
나만을 위한 것들이 즐거웠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런것들이 시큰둥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타인에게 주는 사랑의 행복함이나 충만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관계를 떠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함께 살도록 만들어졌으니깐...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때쯤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해 있다.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해 준 어쩌면 평생 다시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 시절의 인연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늘 일요일마다 찾아뵙던 글,

이번에는 명절을 맞아 수요일 하루 더 들고 올게요.

추석 연휴 동안 잠시 쉬어가며 함께 읽어주세요.


10.8 수요일 추석특집 발행으로 찾아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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