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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갈등,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을까?

난임여성에게 남편이란?

by 찐스마일

시험관 시술 중 가장 가깝고도 직접적인 사람은 단연 남편일 것이다. 우리의 아이를 위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임 여성들 사이에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언제나 따라다닌다.


시술이 과거에 비해 간편해졌다지만, 어디까지나 ‘예전보다’일 뿐. 여전히 여성에게는 벅찬 과정이다.

더욱이 시술의 대부분은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남편이 겪는 육체적 고통은 없다. 정신적 부담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를 위로하고 지켜보는 차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난임 여성들이 모이면 남편에 대한 푸념은 끊이질 않는다.


“영양제도 제대로 안 챙겨 먹어요.”
“담배 아직 못 끊었어요.”
“채취 앞두고 회식에서 술에 절어 왔어요...”
이야깃거리는 줄줄이 쏟아진다.


아이를 위한 여정이건만,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하는 쪽은 늘 여자다.
“남편은 영상물 보고 채취 몇 분이면 끝이잖아.
우린 주사 맞고, 약 먹고, 마취까지 받아야 하는데…”


직장과 병행하면, 진료에 반차를 내고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 자가 주사는 화장실에서 눈치껏 놓아야 하고, 퇴사할 경우 커리어도 함께 접는다.


그에 반해 남편은 보통 출근 전 병원에서 채취하거나,
그마저 어려우면 전날 집에서 채취한 용기를 아내가 가져간다. 어떤 의료진은 “전날 밤에 채취해 오셔도 됩니다”라고도 한다.


물론 남편이 식사나 집안일, 이식 후 간식 챙기기 등을 맡아주는 경우도 많다. 자가주사를 직접 놓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주사 놓는 걸 도맡는 남편도 있다.
채취 날 마취에 풀린 아내를 부축하거나, 이식 날 동행해 정서적 지지를 해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차수가 거듭될수록 점점 사라진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여성 혼자만의 싸움이 된다.
그래서 동지를 찾게 되고, 남편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부부싸움은 그 다음 수순이다.

여기에 시댁의 출산압박이 같이 들어오면 그 불씨는 더더욱 커진다. 나 역시 병원을 타지역으로 옮긴 뒤 남편은 회사 근무 때문에 오전에 잠시 채취만 하고 돌아갔다. 나는 채취날 마취의 휴유증을 안고,

아픈배를 부여잡고 기차로 혼자 복귀하기도 했다.

나는 늘 혼자 기차를 타고 진료를 받았다.

혼자 기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은 생각이 더 많아진다.
기차역에서 샌드위치 하나로 식사를 때우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나 혼자만의 아이인가?”


그리고 진료실에서 의사와 나눈 이야기를 남편에게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속이 끓어오른다.
“그건 우리랑 안 맞는다니까?

아까 얘기했잖아. 왜 또 묻는 거야?”


그 순간,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 시기의 나는 예민했고, 날이 서 있었다. 호르몬주사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난임병원의 대기실은 언제나 붐빈다.
저출산이라는데, 난임병원 안은 전혀 아니다.
5분 진료를 위해 2시간을 달려온 이들.
4시간 넘게 걸려 온 여성도 있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 임신에 성공해 들떠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신혼부부도 보인다.

가끔씩 남편이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살짝 부럽다. “시작이구나… 풋풋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직장인이었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때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타인의 입장을 살필만큼의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모든 것이 꼬여 보였고, 기대가 커질수록 서운함도 커졌다.


시술 중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
하지만 그 기대의 무게만큼, 가장 서운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게 ‘남편’이다. 어쩌면 그들 또한, 이 여정의 조용한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다음화 <마흔이 넘어서야 결혼과출산이 내게 온 이유2>

로 일요일 밤9시 찾아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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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생인생의 결혼과 출산〉 연재 중

처음부터 보기 --> 비혼은 아닌데요...40대, 여전히 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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