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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병원 사이, 그 아슬아슬한 균형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by 찐스마일

난임 시술을 앞두고 여성들이 가장 고민하는 게 있다. 바로 ‘직장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난임카페에는 이런 글이 늘 올라온다.

"직장 다니면서 시험관 가능할까요?"


그 아래엔 다양한 답이 달린다.

"힘들지만 가능합니다.
절대 퇴사하지 말고 병행하세요."

"퇴사했더니 오히려 더 힘들더라고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임신은 때가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퇴사하고 집중하세요."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직장과 병원을 오가며 시술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회사 화장실에서 혼자 주사를 놓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채취일 전까지 매일,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아야 했다.

집에서 맞을 땐 괜찮았다. 문제는 출근한 날이었다.


약은 실온에 두면 안 되기에, 아이스팩과 함께 주사가방에 챙겨서 다녔다. 주사가방이 보이는 게 싫어 일부러 큰 가방에 몰래 넣고 출근했다. 회사 냉장고에 몰래 넣을 땐 검은 비닐로 감쌌다.


동료들과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잠그고 손을 씻고, 깊게 숨을 쉬고, 아이스팩에서 약을 꺼냈다.

배를 걷고 주사를 살포시 찔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화장실에서 나한테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주사를 급히 찌른 날엔 피멍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척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일을 했다.
동료들은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진료 예약 때문에 반차를 쓸 때면 너무 잦다보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1년에 3일 난임휴가라는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3일 혜택을 보고자, 내 상황을 오픈하기보다는 내 연차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병원 대기 중엔 업무 생각에 불안했고, 이식 후에도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으려고 뒤로 한 발 빠지곤 했다.
그럴 땐 “오늘 두통이 있다”고 둘러댔다. 혹시라도 착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험관시술 중이라고 솔직히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하지 않았다. 괜한 관심과 뒷말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혹시나 성공 여부를 물어보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난임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무관심이 가장 큰 위로다.”


마흔 넘어 결혼한 나에게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아이 생각은 있어요?”


그럴 때면 그저 웃으며 대답한다.
"생기면 낳고, 아니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돌아오는 말들은 내 기분을 상하게한다.

자식 낳아보니 무자식이 상팔자야.
둘이 편하게 살지 뭐 하러 고생하니?

늙어서까지 자식 뒷바라지 할래?

애 낳고 키우는 기쁨을 느껴봐야지.
얼마나 이쁜 줄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내 인생을 자기들 이야기로 채운다.
그 안에서 시술을 당당히 오픈하고 ‘이번이 8번째 실패예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험관 시술은 여성 혼자 짊어지는 싸움이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직장에서는 더 외롭다.

‘내 아이를 위한 길인데’ 하는 마음으로 견뎠지만,

그 길은 예상보다 외롭고 힘들다.

결국 나는 타지역 병원 전원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퇴사 후에도 문제가 생겼다.


시술에 더 집착하게 됐고, 실패는 더 큰 절망이 됐다.

사소한 증상도 일희일비하고 검색하며 난임카페만 들락날락했다.

‘직장 복귀’라는 새로운 숙제까지 떠안게 됐다.

경제적 불안도 컸다.


월급이 끊기고 나니 시술 한 번 한 번이 큰 부담이었다.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이걸 또 반복하면 어쩌지’ 하는 막막함이 더해졌다. 카페 커피 한 잔도 망설였고, 영양제도 하나둘 줄였다.


카드값 고지서는 보기도 싫어 바로 버렸다.

시술날 100~200만원씩 결재하는 원무과에서는 카드 꺼낼때마다 기운이 쑥 빠졌다.


그래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술을 이어가는 여성들도 많다. 경제적 이유도 크지만, 꼭 그것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사회에 속해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직장과 병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퇴사한다고 바로 임신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에 올인하면 그만큼의 리스크도 크다. 하지만 퇴사 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게,
긴 터널을 묵묵히 걸어가며 버틸 뿐이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은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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