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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작 Oct 11. 2021

ep.22  오해의 이중성

요새 주로 제가 하는 방송일은 팩트체크라는 포맷의 뉴스입니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정보의 오해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가치의 오해를 판단하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일에 무게 중심을 둡니다.

그렇다 보니,  저에게 일적으로 눈에 드는 녀석들은 무수한 오해들입니다. 


그런데, 문득 오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최근에 읽게 된 책을 접하면서 더더욱

세상에서 우리가 오해라고 부르는 것들은 진정 무엇인지,

오해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게 맞는지 ,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정보의 오해는 혼자 할 수 있지만, 

사람과의 오해는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정보의 오해는 감정적으로 득을 줄 때도 있고,

어떤 사람과의 오해는 감정적으로 큰 손실을 줄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정보의 오해를 통한 해결은 해피엔딩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사람과의 오해를 통한 해결은 어쩌면 새드엔딩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정보의 오해는 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사람과의 오해는 외로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의 오해는 해결하기 쉬울 수 있으나,

사람과의 오해는 해결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무조건 나쁜 것인가?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뉴스에 대한 오해는 나쁠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사회관계 속에서의 오해는 

나쁜 영향만 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오해.

누군가에게 침묵이 필요할 것 같은 오해.

누군가에게 비밀을 지켜줘야 할 거 같은 오해들은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공적으론 오해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나,

사적으로 오해를 마냥 싫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해를 통해,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은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방송작가로서 업무를 하는 시간 동안은

오해란 녀석들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정확한 사실로 전환시키는 일을 합니다.

오해를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다만, 다른 저의 시간엔, 

오해를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하고,

오해에 대해 때론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합니다.

때론 그 오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으면서도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오해엔 까닭이 있다고 믿습니다.

까닭이 있다면, 

오해도 조금의 이해를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왠지 오해를 나쁜 단어로만 인식하고 싶지는 않네요. 



< 오늘의 속삭임 >


솔직함은 글의 매력이지만, 

솔직하기만 한 글은 어딘가 폭력적입니다.

글에는 까닭 있는 솔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 이슬아 * 남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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