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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작 Nov 07. 2021

ep26.  우리 사회 히어로 모집 중  


난   '유 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하 '유 퀴즈'라 칭하겠다.)

종종 통화하는 작가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내 주변의 지인들 혹의 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유 퀴즈'라는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봤다.

처음 '유 퀴즈'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도,

한 후배 작가가 '언니~ 그거 봤어요? '유 퀴즈?" 

난 당연히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좋아한 세대, 아니 환장한 세대이니, 

제목부터 솔깃 안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배 작가의 말. '저 그 프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말했던 

그 표정의 생생함이 기억난다.


찾아보니, 이 프로그램이 처음 방영된 날짜가 

2018년 8월 29일이다.

TVN 방송치고 꽤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나도 본방을 간헐적으로 보기도 했고,

그냥 적적하고 뭔가 세상이 씁쓸하다고 느껴질 때

핸드폰 속 화면으로 프로를 찾아보곤 한다.

그건 지금도 종종 그렇다.  


그 속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신의 살아온 인생

혹은 직업 인생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힘들고 고단했던 에피소드들과 함께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이야기들을 한없이 쏟아낸다. 

간접적으로도 알지 못했던 직업세계가 나오면,

그런 일을 하는 그들의 노고와 노력 힘겨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흡입력이 있다. 알고 싶은 정보성을 넘어선 감동의 설득 

그리고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편안한 이야기를 끌어내 줄 수 있는 건

단연  초대 손님 옆에 앉아있는 에이급 MC들도 한몫하겠지만, 

생애 최초 방송 출연인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은 그 공간과 그 시간이 어색할지라도 

미숙하다기보다, 진실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진심으로 털어놓는 것 같다. 


요샌,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예인들의 이야기보다,

난 다양한 직업의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서도 그다음 질문이 뭘지

그다음 대답이 뭘지 궁금한 건 그냥 우리 주변에 열심히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일매일 진흙탕 속 정치권 싸움.

서로 변명해 대기 일수인 정치인 뉴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사건 사고 뉴스,

그런 것들을 맨날 보고 있으니, 

나에게 당연히 이런 스토리들은 자체가 힐링이다.


사실 요새 그래서 읽고 싶은 책들도,

세상의 어려움과 혹은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작은 역할로나마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끌린다.


이번에 읽은 에세이도 그런 차원에서 추천받기도 했고,

주저 없이 읽게 됐다.


도심 속에서 왕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주치의의 이야기다.

'살림 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 '살림의원'의 가정의학과 의사다.

누구나 차별 없이 진료받는 사회를 위해 왕진가방을 챙겨

자전거에 올라타는 여자 의사다.

이분도 전혀 안 알려진 분은 아니다. 

라디오 방송에선 인터뷰를 종종 하신다. 


왕진을 가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얼 하냐고 자주 묻는다고 한다.

그럼 그녀는 무얼 하나,

욕창을 치료하기도 하고, 상처를 드레싱 하기도 하고,

혈액검사를 하기도 하고, 혈액검사 결과지를 들고 가서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혈압만 체크하고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심전도 모니터 기계만 

들여다보다가 끝나기도 한다.

호흡기를 조작하고 돌아오기도 하지만,

숨을 잘 쉬는지 확인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관장이나 방광 세척도 하고, 

가끔은 기저귀를 갈고 오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아예 청진기도 가방에서 꺼내지 않고, 

환자의 얼굴도 거의 보지 않고, 

보호자와만 얘기하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환자들의 손발톱만 깎고 오기도 하고, 

귀지만 파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것들이 다 생명을 지키고 구하는 일이다. 

글로 써내려 보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지적 장애인부터 독거노인, 심지어 성매매 여성까지,,,

혼자서는 병원에 가기 힘든, 혹은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왕진은  한줄기 빛이자 그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다.


수많은 왕진 에피소드를 읽고 있자니,

마음은 참 훈훈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는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잘 살고 있는 건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난 무얼 할 수 있는지,

자책 아닌 자책도 든다.


지금 우리 눈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세상 곳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구하고 있는 우리의 히어로들.

그들이 수면 위로 보일 때, 

비로소 그들에게 위로를 받지만,

그 위로의 깊이는 나에게 참 크다. 


나는 당장 누군가에게 히어로가 되어줄 순 없어도, 

언젠가 우리의 히어로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게 하고 싶다.

하나둘 히어로들을 찾아 놓다 보면, 

사람들에게 소개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오늘은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 오늘의 속삭임 >


                 왕진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면, 

                 진료실이 거리로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에 빠진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중에 이렇게 여유 있게 

                 동네를 거니는 의사도 없을 거라며,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가방을 들면 

                 나는 코스튬을 입고 변장한 히어로가 되어

                 동네를 누비는 것 같아 가슴이 뻐근해진다.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 추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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