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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작 Aug 07. 2022

ep 48. 브레이크를 두려워 말라  

인생에선 예기치 않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가 온다.

마흔 살까지는 정말 병원 문턱을 밟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마흔을 뜻하는 불혹의 의미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했건만,

나에게 불혹은 예기치 않은 나의 신체 장기 어디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생애 처음 구급차도 타보고, 응급실도 가보고,

아무튼, 병원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해본 나의 나이 불혹.

난생처음 타본 구급차는 베드도 작고, 승차감도 엄청 덜컹거리고

가뜩이나 신체 반응에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상황이어서 그런 건지,

내부는 찬 공기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위안을 주는 건 옆에 있는 보호자뿐.

누워있는 내내 이 차가 어떤 도로를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언제쯤 병원에 도착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여러모로 답답한 느낌.

정신은 멀쩡한데, 한편으론 혼미한 느낌이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이지만 딱 그렇다.

 


응급실 역시 코로나 이전,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그리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다 다시 폭발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지금

이렇게 3번 정도 가본 듯한데,

그때마다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응급실은 꽉 찬 베드에 실시간으로 베드로 이송되는 환자들.

무언가 분주하고 북적대고 공기의 흐름에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많이 아픈 응급은 밤이나 새벽에 일어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하며...

심야시간 내내 응급실은 쉴 새 없이 분주하다.

그런 분주한 가운데,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은

곳곳에서 더 빨리를 재촉하고 동동댄다.

환자의 입장에선 이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환자에게 간호사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환자복을 입히고,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고, 수액 주사 바늘을 꽂는다.

한참을 누워있다 보면, 예진을 보러 온 응급의학과 의사와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증상을 물어보고 증상에 따라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한다.

대학병원이라  여러 명의 의사들이 증상에 대한 질문을 하 몇 번은 왔다 간다.

그리고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의 응급실은

신속 코로나 검사를 먼저 하고, 코로나 음성이 확인돼야 정식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응급실에 분리해둔 예비 베드에 누워있다.

보호자도 제한적으로 출입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비닐 방호복 같은 걸 입고

보기에도 엄청 힘들고 피곤하고 불편해 보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응급실에선 이것저것 체력적으로 소모되는 일도 많을 텐데,

비닐 방호복과 각종 방호 장비들은 그 체력적인 소모를 몇 배는 가해주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응급실에 간 환자인 나는 검사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간단한 수액 치료와 처방을 받고 응급실에서 퇴원하는 기쁨을 맞 볼 수 있다.

나에게 두 번의 응급실을 그러했다.


그리고 마지막 응급실은 일요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과거 응급실보다 분주한 공기는 덜했다.

코로나 검사도 응급실 들어가서 후에 실시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주삿바늘 찌르는 것보다

코로나 검사로 코 찌르는 게 난 더 아프다.

곳곳에서 환자 앓는 소리도 덜했다.

내가 몸으로 체감하는 건 제일 아팠지만,

과거 응급실을 왔던 것 중에 공간의 분주도는

그래도 가장 평온한 편이었다.

내 몸만 평온하지 못한 느낌일 뿐.

결국, 난 입원과 수술이 불가피한 진단을 받았다.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땐 진짜 무서웠는데,

사람은 참 경험이 약이라고,

세 번째 같은 응급실을 오니, 이제 그리 두려움도 전보다 덜하고

공포스러움도 덜해졌다.

이번엔 수술실도 마찬가지 었다.

빨리 수술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공기가 찬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냥 므흣한 광경이 펼쳐졌다.

줄줄이 수술 환자들이 각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에

휠체어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수술을 기다리는 1분 1초가 길게 느껴지는데,

수술 대기실에선 클래식을 틀어놓는다.

클래식 BGM 속에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겹게 대화들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출산할 때도 클래식을 들려줬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건 산모고, 개인적으로 헤드폰으로 산모의 심신 안정을 위해

배려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수술방 대기실에서 동병상련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클래식을 들으니, 한결 공포감은 덜한 기분이었다.

이게 클래식의 마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다.



결국 난 아무 기억도 안나는 4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언젠가 작별해야 할 수도 있었던 장기들과

진짜 작별을 하고, 나의 몸은 가볍게 다시 태어났다.

기분이 참 묘하다.

수술 후에 떼어낸 장기를 사진으로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셨는데,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다.

이제 나에게 더 이상 고통을 안 줄 테니 시원한 기분도 들면서,

무언가 내 몸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기분도 들면서,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제 응급실과 수실은 나에게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진한 작별인사를 제대로 해주고 왔다.


사실 건강은 관리하기 나름이라고도 하지만,

특별히 운명적으로 닥치기도 하는 것 같다.

근 3주 동안은 브레이크를 밟고 빨간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주변은 잘 봐지지도 않고, 주변은 안 봐도 될 것 같고,

오롯이 멈춰있는 빨간 신호 불빛과 정지해 있는 나만 있는 기분.

아무 기억도 없는 4시간 이후에 난 가벼워진 내가 된 듯하고,

휴식과 요양이 필요한 3주 동안 많은 생각을 안 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초록불이 켜졌다.

나는 이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액셀을 밟는다.

훗날엔, 이 3주의 시간이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길 바라며,

나는 당분간 먼길을 달리길 바라본다.


워킹맘들이여~ 브레이크를 두려워 말라,

브레이크도 밟아야 할 땐 제대로 밟아야 더 큰 사고가 안나는 법이니까...

엑셀만 밟으며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니까...




< 오늘의 속삭임>


인간의 뇌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

하지만, 책이 너무 많이 쌓은 곳에서는 특정한 책을 찾기 어렵듯이

모든 기억이 다 살아있다면,

필요한 기억을 제때 찾을 수 없잖아?

그래서 쓸데없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은

거의 잊힌 상태로 보관되고 있어.

기억력 뿐 아니라, 연산능력, 감각능력, 집중력 같은 것도

너무 발달하지 않도록 인간의 뇌가 제어해.


                                         ' 작별인사'       - 김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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