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작 Aug 21. 2022

ep 50. 여성의 우정이란?

오랜만에 제목이 솔깃해 읽게 된 '여자들을 위한 우정의 사회학'이란 책을 보다 보니,

지금 나를 중심으로 내가 속해있는 사적인 모임들의 마인드맵을 그려보게 됐다.

근데 공교롭게 난 3명 조합의 모임을 많이 유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여건상 자주는 아니지만,

간헐적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만나는 친구들은 다 3명씩 이루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3명으로 시작하지 않은 그룹도 있지만,

결국 오래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3명 모임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 나와 인연을 오래 맺고 있는 방송작가 선후배들

방송국 사람들, 우리 아들로 인한 학부모 모임까지도 사적으로 친밀한 모임은

3명 모임이 많다. 참 공교롭긴 하다. 

 


어릴 땐 친구들끼리 처음 뭉쳐 다닐 땐,

홀수보다 짝수가 좋다고 4명 모임을 만들곤 했는데,

결국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한 테이블에 3명이 앉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떠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

관계에 있어 홀수와 짝수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지는 오래된 것 같다.

물론 아주 돈독하게 오붓하게 둘만 만나는 관계들도 있지만,

나 스스로 관계 통계를 내보니, 3명이 많다.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의 인간관계들은 고착화되어간다.

반추해보면, 어릴 때부터 마지막까지 알고 지낸 시간은 다 다르지만,

별 성장통 없이 관계가 잘 정착된 그룹이 있는가 하면,

나름 갈등과 성장통을 겪고 관계가 정착된 그룹도 있다.

인간의 감정이야 다 비슷하겠고,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다 비슷하겠지만,

어릴 땐 그랬던 것 같다.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 요즘 말로 찐 친이라 생각했던 때.

친구의 그 무언가를 내가 몰랐을 때의 서운한 감정.

나의 사소한 일이라도 친구에겐 꼭 알려줘야 할 것 같은 그런 감정.

그런 감정 성장통을 겪으며 초, 중, 고 친구들은 관계 성장을 한 것 같다.


대학에 와서 사귄 친구들은 좀 다른 패턴이었다.

처음엔 사는 지역도 다 다르니,

다름에 대한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많은 호감들을 표출한다.

반면에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탐색하는 과정과 시간도 필요했다. 

무언가 다소 맹목적이지 않은 

알아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가치관과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한 부류들이

친구가 되기 쉬웠던 것 같고,

아무래도 학교에서 수업 듣는 활동보다는 

수업 외 활동을 같이 즐기기 좋은 관계들이 친구가 쉽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맺어진 나름 돈독한 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공적으로 많은 시간을 붙어있을 때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류가 많다.

어느 정도 끊기지 않는 대화와 일정한 주기의 모임을 통한

서로의 노력에 의해 관계가 적절히 잘 유지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될수록 더 편하고 소증 하게 느껴지는 관계들이다.

지금은 인생의 일부분을 잘 지탱해주는 소중한 자산 같기도 한 존재들이다. 


우정을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는  

<친구 지키기>의 저자 쥴리 클램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세상이 정말 살기 힘든 곳이라는 걸 늘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세상이 남자에게 힘든 곳이라면, 여자에게는 그보다 몇 배나 힘든 곳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서로를 위해 정말 믿을만한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여성들이 각계각층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성이 하는 일 또한 여성들이 견디고 있는 일들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건 친구들과 오래된 지인들임은 맞는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 사회엔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느 정도 다른 영역이 있다. 현실이다.

그럴 때 우리의 이런 돈독한 네트워크는
분명 한 번씩 서로에게 큰 에너지가 된다.

물론 나의 사회적 모임엔 혼성 모임도 꽤 있긴 하다.

혼성 모임 역시 일에 활력을 줄 때도 있고,

사회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랜만에 문득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정'은 추상적인 감정이긴 하나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구적 인간관계를 초월한

인간관계라 정의 내려진다.

그리고 때론,

우리는 우정의 충만함 속에서 서로룰 도취시키는 것 같다.

아주 강력하게 말이다.


평범했던 것들이 특별해지는 시기가 있다.

아니 그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

돌아보니, 어떤 관계든 한순간에 이루어진 관계는 없었다.

어느 한쪽의 노력이 기울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시간과 노력으로 인연의 굴레를 이어오고, 

인생의 운명공동체처럼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더욱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들은 어쩔 수 없이 되었고,

돈독한 관계들은 더욱 소중해졌다.

우리의 지금의 우정들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관계들이 아니라,

때론 멀리, 때론 가깝게 서로의 삶의 장면들에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그러니, 서로의 우정의 크기를 굳이 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속삭임>

여성의 우정은 부차적인 게 아니라,

우리에게 친밀함과 다정함, 관대함, 인간성의 실체를

보여주는 관계라고 역설했다.

법적으로 승인받은 관계에서는 보기 힘든 방식으로 말이다.

우정은 여성들을 더 단련시켜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게 한다.


       "여자들을 위한 우정의 사회학"   -케일린 쉐이퍼- 

작가의 이전글 ep49. '딴짓' 찾아 삼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