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행복과 불행 간의 관계에 대해서
불행은 행복에 관심이 많지만, 행복은 불행에 관심이 없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로, 국내에는 2011년 3월 개봉한 영화이다. 원제는 'Another Year'로, '또 다른 한 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필자에게 상당히 특이한 기억으로 남겨진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가 상당히 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계절>이 이동진 평론가의 만점 작품이기도 하고, 그 제목이 가져다 주는 오묘한 끌림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직후 그 기대는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이게 대체 이게 왜 훌륭하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해석들을 하나 둘 찾아보다보니,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의미가 내 안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갔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난 오늘 날, 이 영화는 나에게 '만점 영화'이자 '인생 영화'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이 영화의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는 어떤 OTT에도 올라와 있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추천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의 훌륭함을 이러저리 설파하고 싶은 나에게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는 중산층 부부 톰과 제리의 일상을 사계절에 걸쳐 따라간다. 이들은 안정된 결혼 생활과 사회적 기반을 가진 인물들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집은 친구들과 가족이 들러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기도 하며, 관객은 이 부부의 정원 가꾸기, 요리, 대화 등을 통해 평온한 일상의 리듬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 평온한 일상 속으로, 과도한 수다와 외로움으로 가득한 직장 동료 메리, 무기력한 친구 켄처럼 삶이 어긋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게 된다. 그중에서도 메리는 톰과 제리 부부의 안정된 삶에 깊은 부러움을 느끼며, 급기야 부부의 아들인 조이에게 호감을 표현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이와 그의 여자친구 케이티, 그리고 메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메리는 이 자리에서 선을 넘는 언행으로 부부에게 실망을 안긴다. 이후 톰과 제리는 몇 달 동안 메리를 집에 초대하지 않으며,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시간이 지나 톰의 형인 '로니'의 아내가 죽게 되고, 로니는 안정을 위해 잠시 동안 톰과 제리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중, 메리가 갑자기 톰과 제리 부부의 집에 다시 찾아온다. 메리는 제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제리는 갈등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윽고 조이와 케이티도 합류하고, 모두가 식사를 함께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사람들은 이전과 다르게 메리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는', 우울한 표정의 메리를 비춰주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톰과 제리 부부가 만들어낸 가정은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두 사람은 가끔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엔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들 조이는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나 얼굴에 그늘 하나 없이 맑은 인상을 지녔고, 그의 여자친구 케이티 역시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온몸으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이들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봄에는 정원을 가꾸고, 여름엔 친구를 맞이하며, 가을엔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겨울엔 따뜻한 와인을 마신다. 모습은 계절마다 달라지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언제나 ‘행복’ 하나다.
그들의 집은 마치 온실과도 같다. 계절은 바뀌지만, 집 안의 온도는 일정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 안으로 남들을 초대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공간으로는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 행복한 이 부부가 굳이 불행한 타인들의 영역에 들어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번 켄과 메리의 푸념을 들어주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할 뿐더러, 직접 나서서 그들의 불행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는 '불행'을 대표하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의 행적을 통해 불행이 작동하는 모습을 조금 더 세분화시켜보자.
1) 메리 : 행복한 사람과의 연대를 바라는 사람
메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택한 방법은 행복한 사람들과의 연대이다. 그녀는 톰과 제리 부부, 나아가 그들의 자녀인 조이와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이 차도 많은 데다 매번 술주정을 부리기 바쁜 메리를 원할 이유가 없다. 불행은 행복과의 연대를 바라지만, 행복은 행복끼리 연대하기를 바랄 뿐이다.
2) 켄 : 불행끼리의 연대를 바라는 사람
켄은 불행한 사람들끼리의 연대를 통해 불행을 극복해보고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메리와 맺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애정공세는 메리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메리는 '행복과의 연대'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 로니 : 행복하고자하는 의지조차 결여된 사람
로니는 수동적이다. 그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않는다.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하는 메리, 켄과는 대조적이다. 어쩌면 로니는 너무 큰 절망을 여러번 겪으면서, 행복을 얻으려는 의지가 완전히 결여된 건 아닐까? 이런 로니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이후 메리와 켄이 다다르게 될 모습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간에 어떤 상호작용이 발생할까?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각각 살펴보자.
1) 행복 → 불행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을 보고, "행복해질 여지가 많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이란, 당장 가득 채우고 싶은데 채울 방법을 모르는 주머니와 같은 것이다. 주머니를 성급하게 채우려고 할 수록, 주머니 속에 넣었던 물건들은 밖으로 빠져나오려 한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넣는 것과 같은 난제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할지, 불행의 작동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행복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지는 관심은 연민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되는 타인의 푸념을 들어주고 있다보면, 연민은 쉽게 지치고 타인에게 가졌던 관심은 빠르게 휘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부부가 켄과 메리에게 가지는 관심은 일정 수위를 넘지 못한다. 결국, 행복한 이들은 불행한 이들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2) 불행 → 행복
다른 쪽에 속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메리는 톰과 제리 부부가 지닌 ‘행복의 비법’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비법이란, 두 사람이 수십 년을 함께하며 서서히 쌓아온 관계와 신뢰의 산물이다. 그런 감정과 시간이 축적된 결과를 당장 가져와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계절>에 나오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이 부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나보다 행복해보이는 이들의 존재는, 자신과 이들의 행복을 양팔저울 위에 올려 놓은 뒤 끊임없이 그 무게를 비교하게 만든다. 이 양팔 저울위에서 행복의 절대적인 무게는 중요치 않다. 오직 상대적인 무게만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불행한 이들은 소박한 행복을 얻는다 하더라도, 이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얻은 행복이 톰과 제리 부부가 가진 것에 비하면 볼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뛰어난 재능에도, 자신보다 더 뛰어난 모차르트를 끊임없이 질투하며 불행한 삶을 살았듯이,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불행한 이들에게 이 부부의 존재는 쉽사리 인식하기 힘든 재앙과도 같다. 결국, 불행한 이들도 행복한 이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끝없는 불행의 늪으로 침전할 뿐이다.
행복을 동경하지만 그걸 얻는 방법을 모른채 방황하게 되는 이들의 모습은, 메리의 '자동차'에서 잘 나타난다. 메리는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자동차를 구입한다. 처음에는 이곳저곳을 다녀볼 생각에 신난 메리지만, 운전을 잘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차는 곧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결국에 그녀는 차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폐차 값으로 샴페인을 구입한다. 샴페인을 마시게 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행복감은 오래가자 못한다. 톰과 제리 부부처럼 꾸준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꿈꿔온 메리는, 방황끝에 다시 일시적인 쾌락만을 즐길 수 있는 삶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면, 불행한 사람들끼리의 연대를 통해 불행을 벗어나는 건 가능한가? 정말로 안타깝게도, 그리고 잔인하게도, <세상의 모든 계절>은 그 가능성마저 짓밟아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메리가 켄을 거부했던 것, 그리고 메리와 로니가 함께 서로의 고통을 이야기해도 불행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원제 'Another year'와 번역명 <세상의 모든 계절>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제목은 모두 '순환' 혹은 '반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이 가장 불행한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한 해' 혹은 끊임 없이 반복되고 다시 돌아올 계절 중 하나일 뿐, 특별하지 않다. 결국 불행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행복을 닮아가려는 그들의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한다.
피 한방울 나오지 않는 이 영화는, 그 의미를 곱씹어볼 수록 너무나도 잔인한 영화라는 걸 깨닫게 된다. 불행은 행복을 동경하지만, 끝내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면서도, 끝내 부정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에게는 내일을 살아갈 희망 따위는 없기에.
이미지 출처 : TMDB, Flim-grab